이 동 욱

나는 가고 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기러기의 길

허공중의 길을 따라 가고 있다

낮게 안개 깔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뻘 밭

해오라기 한 마리

가만 가만 물 길, 바람 길을 가지 삼아

댓잎 묵죽(墨竹)을 치고 간다

반구대엔 반구정이 없고

이미 지나온 물 길 가

기러기가 집을 버린 곳

학성 벼랑 가엔

내가 나기도 전엔 번듯한 누대가 있었다지만

그저 멋도 모르고 나는 이곳까지 왔다

촛대같은 바위 그늘을 지나

구름과 산이 잠긴

다운동 태화강의 굽은 허리를 버리고

나는 끝이 어디에 가서 닿는지

울주를 적시며 흐르는 태화강 중 상류에는 사연댐이 있고 굽굽이 수려한 풍광 속에 수 억년 전 선대사람들의 흔적이 바위 벼랑에 새겨져 있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시인의 고향과 가까운 곳으로 여겨지는 여기는 영원의 시간이 흐른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시인은 반구대에 머물러 있는 영원으로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저 멋도 모르고 이곳까지 왔다는 시인의 토로에서 깊은 성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어디에 가 닿기 위해 이리 바삐 세월의 흐름을 타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