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태영호 前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인터뷰

▲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24일 대구·경북지역 기자들과 만찬자리에서 망명결심 배경 등을 밝히고 있다. /박형남기자

“아들 대(代)까지 분단된 영토를 넘겨줄 수 없다는 게 나의 희망이다. 무조건 통일을 시킬 것이고, 고향에 걸어서 갈 것이다. 통일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24일 대구·경북 지역 기자들과 만찬 자리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날 만찬은 새누리당 이철우(김천) 의원의 주선으로 서울 여의도 일대 식당에서 이뤄졌으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망명 결심 배경과 북한의 현 실태, 그리고 대북정책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태 전 공사는 한창 한국 생활에 적응 중이었고, “망명한 이후 기자들과 이런 식사 자리를 처음 해본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태 전 공사는 “통일에 대한 얘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먼 장래로 생각해 한숨을 쉬고 얘기한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통일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말 가슴 아프다”며 “반신반의하면 절대 안된다. 된다고 생각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야 통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신념으로 저는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 외교관들 중에도 망명을 생각하는 이들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 나의
발언은 물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저의 동료, 즉 북한 외교관들이 본다”며 “이들이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은 `태영호가 진실을 얘기하느냐, 거짓말을 하느냐`다. 때문에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실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에 온 북한 외교관이 상당히 많다`는 발언과 관련해 그는 “저보다 먼저 온 선배들 중 가족들을 데리고 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외교관 자식들을 북한에 볼모로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김정은 체제를 홍보하는데 이 사람들의 자식들을 볼모로 잡아놓으면 되겠느냐”며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그분들을 정말 존경한다. 자기가 자신을 희생한다면 괜찮지만 가족들까지 놔두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탈북 경로 등을 말하면 저를 도와줬던 분들이 모두 죽는다”며 “제가 말 못하는 심정을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

사드문제로 韓·美 VS 北·中 구도 형성
개성공단 폐쇄 잘해… 北, 열자고 할 것
원칙 있는 대북지원이 통일 앞당길 터
둘째 교육문제로 망명 결정 보도 맞아

北 외교관들 내가 진실 얘기 하는지 봐
탈북 경로 말하면 저 도와준 분들 죽어
`태백산맥` 영화 덴마크서 아내와 봤죠
영화 본뒤 공산주의 모순 책 자꾸 봐져

△사드와 관련해 북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
-중국과 한국, 그리고 미국이 사드문제를 가지고 싸울테니 북한은 가만히 있는다는 전략이었다. 서로 싸우는 상황에서 중국이 사드배치 반대입장을 밝히면 한국-미국 VS 중국-북한이라는 대결구도를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이 전략이 먹혀들어간 것 같다. 만약 북한이 나서서 사드배치 반대입장을 말했다면 중국이 지금처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외교관 시절 통일 정책 등 한국 관련 서적 탐독했나.
-남한 대북정책 관련 책을 딱히 본 것은 없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다 보는 시대다. 과거 동구권 사회주의 나라가 붕괴될 때 주민들은 서방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생활을 라디오를 통해 몰래 들었다. 이로 인해 자유민주주의를 동경했다. 지금은 북한 사람들이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고 있다. USB를 통해 한국영화가 들어가고 스마트폰으로 한국 뉴스를 본다. 현대 과학 기술은 1990년대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될 때와 비교도 안 되게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도록 기술이 진보했다. 이점을 유심히 봐야 된다.

△ `태백산맥` 영화를 보고 체제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좌익 영화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1997년도 덴마크에 있을 때 처음 한국영화를 접했다. 아내와 한국 영화라는 제목만 보고 영화를 봤는데, 그게 빨치산에 대한 영화였다. 영화가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할아버지, 아버지 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앞부분에서 남노당 개별 투쟁을 잘 그렸다. 북한에서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많은 북한 노동간부 등을 숟하게 처형했고, 아사 현상까지 일어났다. 1950년대 있었던 일을 영화로 만들었지만 영화 기본은 체제, 이념 대결이다. 특히 그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개성을 허용하지 않고 사상의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으면 북한과 같은 현실을 초래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공산주의 이념, 이게 과연 중요하냐는 의문이 들었고, 북한의 공산주의와 김일성의 세습 정치 사회 모순 그런 책을 자주 보게 됐다.

△아들 교육 때문에 망명을 결정했다는 보도가 있다. 얼마나 정확한가.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다 같지 않겠나. 자식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저는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념적으로 오래전에 터득했다.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념적으로 아는 것과 그걸 자기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사실 북한 외교관들은 사상적으로는 북한 체제에 등을 돌린 상태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북한 체제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 체제에 맞춰 움직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교육에서 모든 사회는 김정은 위원장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유럽교육은 개인과 개성을 많이 발전시킨다. 유럽에서 아이들이 빙 둘러 앉아 사상의 자유 등을 배우면서 지내다보니 점차 머리가 굳어졌던 것이 풀리고, 북한의 현실을 영국 현실과 결부하게 된다. 일례로 영국 학생들이 아이에게 `김 위원장처럼 머리를 깎지 않으면 잡아간다는데 머리 기르고 다녀도 괜찮겠어?`라고 놀린다. 여기서 부딪히는 환경 등 풀리지 않은 질문을 아들이 물어본다. `북한이 못살고 있는데 경제 구조와 정책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 `북한 당국의 미국의 적대시 정책도 문제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거짓말 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제 자신이 모순에 빠지기도 했다. 북한의 정책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대외적으로는 외국인들에게 홍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모순에 저를 빠뜨리는 것이다. 특히 노란물이 들어간 아이를 북한에 데리고 가면 아이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무슨 과오를 저질러 수용소에 끌려가든지 했을 때 `아버지가 해외에서 탈북할 때 같이 탈북했으면 내가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처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아이가 원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단계에서 노예 사슬을 끊어주자라는 생각에 망명을 결정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박근혜 정부의 불관영 정책도 실패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은 햇볕 정책도 한번 해보고, 보수 정권에선 강경, 제재 정책도 해봤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훈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판별하고 저 정책은 잘못됐으니 저 당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하겠다는 방도를 찾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햇볕 정책은 그 당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남한의 발전된 실상과 남한의 적대감을 낮추는 등 평화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다시 햇볕 정책을 펼친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얻은 교훈에 기초해서 원칙성 있는 대북 정책을 실시해야 된다. 식량지원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전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에 식량을 지원할 때는 어떻게 준다는 규정이 있다. 식량이 당국에 넘어가지 않고 진짜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급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모니터링한다. UN이 규정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때 산골짜기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 일일이 확인하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한다. 미국 역시 쌀 100t 중 10t은 주민들에 가고 나머지는 군에서 가져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지원한다. 그 이유는 북한 사람들에게 10t이라도 간다는 점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없애기 위해서다.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 문제는 북한이 이럴 때마다 국가와 국가간에 쌀을 주고 받는 것이고, 북한은 `남북은 형제들끼리 주고 받는 것`이라며 1991년 남북관계 기본 합의서를 거론한다. 기본 합의서에 국가 관계가 아니라 통일로 가는 특수관계라고 했는데 국가관계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한국도 동의한 통일로 가는 특수관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북한이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한국은 할 소리가 없다며 가져가라고 했다. 이젠 그렇게 하면 안된다. 북한이 또 이렇게 나온다고 해도 통일로 가는 특수관계에 있지만 국제적인 규정대로 북한 사람들에게 쌀이 전달되는 것을 우리도 봐야겠다고 주장해야 한다.

△ 이럴 경우 어떤 효과가 있나.
-한국에서 평양에 3층짜리 아동병원을 지었다. 북한 당국은 한국에서 지어줬다는 것을 비밀로 부쳤고, 한국사람들이 떠난 뒤 병원의 문을 열었다. 그 병원을 보고 북한사람은 놀라워했다. 책, 학습지 등 도서관은 물론 병원안에 놀이터까지 갖춰놔 북한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북한사람들은 김 위원장이 당 자금으로 만들어준 것 아니냐고 알고 있었는데, 의사들이 `아랫동네(한국) 아이들이 건설해준거야`라고 말하면서 평양시내에 소문이 확 퍼졌다. 이런 얘기가 김 위원장에게 보고됐고, 그 즉시 김 위원장은 `(아랫동네) 아이들이 병원 하나 들여와서 북한주민들 속에서 아랫동네 휼륭하다는 말이 도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당장 당 자금 풀어서 평양 문수거리에 그 병원의 몇배가 되는 큰 병원을 지어라`고 지시해 돌격대가 동원돼 1년 반만에 지었다. 결국 조그마한 병원이 김 위원장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병원을 짓게 했다. 핵무기에 들어갈 돈이 이렇게 쓰인거다.
개성공단 폐쇄도 차라리 잘됐다. 돈 때문에 북한에서 꼭 열자고 할 것이다. 한국은 원칙적으로 해야 된다. 그런데 돈으로 주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일례로 북한의 보건 실태가 열악하다. 약도 없고, 마취제 없이 큰 수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금을 주는 대신 병원 하나씩을 지어주겠다는 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병원 치료는 북한 주민들이 받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주민들은 한국이 지어준 병원이 좋다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러한 방법이 통일로 가는 길이자,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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