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세르비아 ②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저녁 무렵. 고풍스런 건물에 전등이 켜지고 있다.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저녁 무렵. 고풍스런 건물에 전등이 켜지고 있다.

아름답고 고풍스런 건물이 줄줄이 늘어선 세르비아의 전원도시 노비사드. 운 좋게도 머물던 시기에 영화 촬영이 진행되고 있어 그 현장에도 가볼 수 있었다.

아마도 `1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인 듯 멋지게 장식한 마차와 클래식한 디자인의 자동차가 함께 등장했다.

팔과 다리가 늘씬한 남녀 배우들이 대기하는 카페에선 그들과 눈인사도 나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영화배우들은 미남이고 미녀였다. 여배우의 푸른 눈동자가 빛나는 햇살 아래 사파이어처럼 반짝였다.

오랜 시간의 산책과 영화촬영 현장 구경이 지겨워진 기자는 잠시 쉬려고 묵고 있던 `소바 호스텔`로 돌아왔다.

유럽과 할리우드의 영화포스터가 벽면 가득 걸린 깔끔한 숙소.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숙소 주인은 동양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노비사드에 도착한 첫날 저녁. 벨기에에서 온 70대 할아버지와 독일 여대생들, 숙소 주인아저씨와 기자가 공용거실에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

동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아직 한국에 관해 세세한 사항까지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독일 여학생 하나가 “한국은 중국과 같은 문자를 쓰느냐?”고 물었다. 또 변변찮은 영어 실력으로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해야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숙소 주인이 먼저 나섰다.

 

▲ 수많은 여행자들이 오가는 베오그라드 중앙역.
▲ 수많은 여행자들이 오가는 베오그라드 중앙역.

▲ 한국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었는데…

“한국은 중국과는 별개의 나라이고, 언어와 문자도 다르다. 중국 문자는 사물의 형상을 본뜬 것인데, 한국의 경우엔 아니다.

수백 년 전에 어떤 왕이 한국만의 문자를 만들었다. 일본 문자는 중국, 한국과는 또 다르다”는 요지의 설명을 거침없이 펼치는 숙소 주인.

기자는 `어떤 왕`이 `킹 세종(세종대왕)`이라는 것만 부연하면 됐다. 수고를 덜어준 고마운 주인아저씨.

그가 한국에 관해 알고 있는 건 그 외에도 많았다. 삼성 핸드폰이 노키아 제품보다 더 많이 팔리고, 현대가 한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 생산업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의 영화 DVD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작품들이 “동양적인 매력과 독특함을 보여 준다”는 감상평까지 내놓았다.

한국영화에 관한 그의 판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저 정도면 세르비아 노비사드에선 한국에 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군”이란 혼잣말이 나왔다. 그런데….

낮잠을 자기 위해 숙소로 돌아온 기자가 가벼운 인사를 전하자, 소파에 기대 앉아 책을 읽던 그가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어제부터 봤는데 너 말이야, 너희 나라 대통령인 `미스터 킴`과 너무 닮았어. 왜 김정일이라고 있잖아.” 기자가 세르비아를 여행했을 때는 김정일이 죽기 전이었다.

갑작스런 말에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며 그가 한마디를 더 던졌다.

“프레지던트 킴은 세르비아에서도 유명해. 미국이 무서워하는 핵을 가졌잖아.”

아…, 그는 기자를 북한에서 온 여행객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이어 김정일과 닮았다니.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는 김기덕과 홍상수도 북한의 영화감독인 줄 알았던 걸까?

노비사드. 한국 사람들은 남·북한을 불문하고 모두 닮았다고 말하는 이들과의 만남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고,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겪은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 베오그라드 시내엔 소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많다.
▲ 베오그라드 시내엔 소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많다.

▲ 베오그라드, 미녀 호객꾼을 만나다

늦은 밤 홀로 낯선 도시에 도착한다는 건 설레는 동시에 조금은 두려운 일이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중앙역. 기차에서 내린 건 자정이 훨씬 지난 오전 2시 무렵.

그럴 땐 장 그르니에(Jean Grenier·1898~1971)의 산문집 `섬`의 한 구절을 조용히 되새겨 보면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다.

새벽녘, 안개 낀 낯선 항구에 도착하고 싶었다
거기서 가난하고 겸허하게 사는 꿈
비밀이 없는 삶이란 서랍 없는 책상과 같은 것…

베트남의 고풍스러운 도시 훼(Hue)와 아라비아해의 파도가 일렁이는 인도의 마르가오(Margao)역에 도착했을 때도 사방이 캄캄한 밤이었다.

낯선 공간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 혼자 남겨진 느낌. 누구나 막막함과 당혹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지나치게 겁먹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혼자 떠난 여행이라면 그 정도 곤경은 이미 예상했을 게 아닌가.

크든 작든 여행지에서의 문제란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이다.

기자의 경우도 그랬다. 훼에선 고교 동창끼리 여행 온 이들의 도움을 받아 근처 숙소를 찾아갈 수 있었고, 인도 마르가오에선 역 바닥에서 반쯤 잠들어 있던 택시기사를 깨워 해변 인근 호텔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렸다.

가끔은 일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최상의 해결책일 수도 있는 것이다.

베오그라드에서도 그랬다. 대부분이 잠든 늦은 밤임에도 국경을 넘어 그 시간에 도착한 여행자들을 위해 역 주변 숙소에서 적지 않은 호객꾼들이 나와 있었다.

저마다 준비한 팸플릿 형태의 숙소 홍보 전단을 보여주며 자신의 호스텔 혹은 게스트하우스로 가자고 채근했다.

 

▲ 동유럽 거리에선 낡았지만 예쁜 자동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동유럽 거리에선 낡았지만 예쁜 자동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숙소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도미토리의 경우 간단한 아침식사를 포함한 1박 가격이 10유로(약 1만3천원) 정도.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젊은 여성이 기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호스텔로 갈래요?” 내미는 전단을 보니 예상했던 가격이다. 비슷한 비용에 유사한 조건이라면 미인을 따라가서 나쁠 게 뭐 있겠는가.

“그럽시다. 여기서 가깝죠?”

배낭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숙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다. 국적과 종교·인종은 다르지만 찾아보면 공통의 관심사가 적지 않다.

역 앞을 벗어나니 인적이 눈에 띄게 드물어졌다. 앞장서 걷는 여자를 따라 기자 역시 발걸음을 빨리했다. 10분 정도 갔을까. 전단지에 찍힌 숙소 사진과는 전혀 다른 낡고 허름한 건물이 나타났다. 내부는 더 지저분했다. 자주 세탁하지 않은 게 분명한 침대 시트가 때에 절어 반질반질했다.

약간 실망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처 살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묵고 떠날 건데 뭐 어때`라는 낙관으로 마음을 돌렸다. 한국의 시골 여인숙도 1만3천원에는 못 구한다. 그 가격에 뭐 대단한 시설과 서비스를 바라겠는가. 생각을 바꾸니 마음도 편해졌다. 기자가 숙박부에 이름과 여권번호를 적는 것까지 본 그 `호객꾼 처녀`는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밖으로 나갔다.

▲ 낯선 공간에서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는 배낭여행자.
▲ 낯선 공간에서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는 배낭여행자.
새해, 나 홀로 배낭여행자가 돼보는 건 어떨까?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한국 여행자를 볼 수 있는 시대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온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미국 등은 물론이고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인 중동과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도 한국인을 만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2017년 오늘.

혼자서 계획과 일정을 짜고 낯선 공간을 헤매 다니는 `나 홀로 배낭여행자`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남녀를 불문하고 혼자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난다는 건 용기와 단단한 마음가짐 없이는 힘들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3일간 머물렀던 때. 기자는 바로 이 `용감한 나 홀로 배낭여행자` 한 명을 만났다. 오르막길이 많은 베오그라드 시내. 돌아다니다 지치고 힘들면 카페에 들러 커피나 맥주를 마시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맥도날드가 보이길래 가벼운 점심식사나 할 겸 들어섰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옆 식탁에 얼굴이 뽀얀 20대 여성 하나가 볼펜 색깔을 바꿔가며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얼핏 봐도 한국어는 중국어·일본어와 구별이 된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물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 베오그라드를 출발해 노비사드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숙녀.
▲ 베오그라드를 출발해 노비사드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숙녀.

그 여학생 역시 기자처럼 혼자서 동유럽을 여행하고 있었다. 나이는 겨우 스물하나. 자신이 다니는 한국의 Y대학 교환학생으로 온 세르비아 학생과 친해졌고, 학업을 마친 후 제 나라로 돌아간 그를 만나러 방학을 이용해 베오그라드에 왔다고 했다.

그늘 한 점 없는 선량한 눈빛에 친절하고 예의 바른 말투. 기자가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나는 기차를 예약한 탓에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홀로 세상을 떠도는 용기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싶었는데….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 요새 근처 맥도날드에서 만났던 그 여학생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사 어려움에 기죽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낯선 공간과 시간이 야기하는 두려움을 너끈히 이겨낸 `나 홀로 배낭여행자들`. 그런 용기와 모험심이라면 앞으로 살아가며 겪을 어려움 앞에서도 쉽게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올해 당신이 이뤄야 할 꿈의 목록에 `나 홀로 배낭여행자 돼보기`를 포함시키는 건 어떨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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