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세르비아 ①

▲ 세르비아를 포함한 동유럽의 광장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 세르비아를 포함한 동유럽의 광장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세르비아.

구(舊)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도국이었던 이 나라에 관해 기자가 아는 것이라곤 칸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1954~)가 활동한 곳이라는 정도였다. 영화 관람을 통해 습득한 지식이 옛 유고 연방과 세르비아에 관해 아는 것의 전부였다는 이야기.

냉철한 유럽풍의 사실주의에 남아메리카 예술의 특징인 마술적 요소를 결합한 `환상적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쿠스트리차의 영화. 그중에서도 `집시의 시간`과 `언더그라운드`는 슬라브족 특유의 쾌활함과 에너지, 위트를 극대화해 보여줌으로써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말까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 연방국들의 독립선언과 이어진 내전으로 유고슬라비아는 큰 비극을 겪었다. 인종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참혹한 시간이 오랜 기간 지속됐다.

그 당시 언론은 이 지역의 또 다른 명칭인 발칸반도를 “유럽의 화약고”라 불렀다. 내전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학살되거나 다쳤다.

 

▲ 거대한 나무에 둘러싸인 노비사드의 거리 풍경.
▲ 거대한 나무에 둘러싸인 노비사드의 거리 풍경.

옛 유고 연방에 전쟁의 포연이 온전히 걷힌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인종과 종교간 비극의 불씨는 아직도 도처에 남아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시기가 시작된 지 겨우 10여년을 넘어서고 있는 것. 기자는 그 지역 나라 중 마케도니아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세르비아를 여행했다.

감자밭과 해바라기밭이 이어지는 광활한 평원

무더위가 한창이던 몇 해 전 8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10시간 가까이를 달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중앙역에 도착했다.

동유럽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그 구간의 풍경은 한국과는 딴판이었다.

온통 감자밭과 해바라기밭 천지였다. 높은 산도 없었다. 덕분에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벌판을 시원스레 달렸다.

쌀이 주식인 우리와 달리 유럽인들은 거의 매일 감자를 먹는다. 그걸 증명하듯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1~2시간 내내 감자밭인 경우도 있었다. 감자밭을 지나면 해바라기밭, 해바라기밭을 지나면 다시 광대한 감자밭이 반복되는 풍경. 녹음 짙은 그 풍경에 도시의 매연에 찌들었던 눈이 편안해졌다.

오래된 열차와 낡은 철로 탓일까? 동유럽 기차는 버스보다 훨씬 느리다.

 

▲ 전통축제를 즐기는 동유럽 사람들.
▲ 전통축제를 즐기는 동유럽 사람들.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까지 버스로는 5시간이면 간다는데 기차는 그 2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신 가격은 절반으로 저렴했다. 시간은 많은데 돈이 넉넉하지 않은 배낭여행자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6명이 앉을 수 있게 만들어진 2등칸에 3~4명이 널찍하게 앉아 느긋하게 바깥 경치를 즐기며 베오그라드를 향했다.

기차에 오르기 전 준비한 간식과 맥주 따위를 동석한 사람들과 나눠 먹고 마셨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대학생 커플과 점잖은 네덜란드 영감님이 같은 칸에 앉았다.

그런데, 전직 역사교사였다는 네덜란드 할아버지가 기자가 국적을 말하기도 전에 “너 한국사람 아니냐?”고 먼저 묻는다.

“맞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딱 봐도 유엔 사무총장인 미스터 반(기문)과 똑같이 생겼잖아.”

“네? 뭐라고요?”

맞은편에 앉은 오스트리아 커플까지 네덜란드 영감님의 견해에 수긍의 고개 끄덕임을 보였다.

 

▲ 세르비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짙푸른 평원.
▲ 세르비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짙푸른 평원.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1944년생으로 일흔이 넘은 노인이다.

당시 기자는 40대 초반. 아버지뻘인 반기문과 똑같이 생겼다니... 세계적인 유명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쁜 뜻에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입장에선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우리가 서양인 얼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인식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는 것처럼, 서양인 역시 동양인의 안면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을까?

이건 그래도 약과다. 세르비아 북부도시 노비사드(Novi Sad)에선 생김새와 관련해 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도나우강 따라 `예쁜 도시` 노비사드를 산책하다

 

▲ 동유럽 공원에 세워진 정교한 조각상.
▲ 동유럽 공원에 세워진 정교한 조각상.

독특한 시가지 형태와 거리에 즐비한 소(牛) 조형물이 인상적인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선 사흘을 묵었다.

그곳에서의 추억담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일단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던 노비사드 여행담부터 시작하려 한다.

노비사드는 베오그라드에서 북쪽으로 30km 가량 떨어진 도시. 깨끗하게 정돈된 시가지와 도심 외곽을 흐르는 도나우강(江)이 인상적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기자를 반긴 건 노비사드 전역에 울울창창하게 들어선 매력적인 녹지. 강변은 물론 주택가까지 그 수령(樹齡)을 짐작키 힘든 커다란 나무가 가득했다. 산책하기 좋은 도시였다.

1990년대 후반. 경기도 과천시에서 잠시 살아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녹지비율이 높아 쾌적하다는 지역.

하지만, 노비사드는 과천 정도가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짙푸른 녹색의 허파처럼 느껴졌다. 평소에는 걸어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사흘 내내 나무 아래와 도나우 강변을 느리게 서성댔다.

베오그라드를 제외하면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라는 노비사드. 하지만, 느낌상으론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 노비사드 외곽. 도나우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 노비사드 외곽. 도나우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한국의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교통량이 적고, 대기오염이 덜해서였을 것이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지만, 무지막지하게 큰 나무그늘에 앉아 물놀이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노라면 더위가 저만치 물러갔다.

강변을 따라 설치된 조각 작품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한강유원지에 지어진 것처럼 유람선 형태로 꾸민 강변 레스토랑에선 맥주도 한잔 마시고.

숙소인 `소바 호스텔` 주인아저씨의 친절과 박학다식함은 여행자를 편안하고 재밌게 해줬다.

그런데, 이 아저씨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이야….

 

세르비아는…

동남부유럽 발칸반도 중앙에 위치한 국가다.

20세기 초반 남부슬라브계 다민족국가인 베오그라드왕국의 일원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의 한 지역이 된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된 후에는 세르비아 공화국(Republic of Serbia)이 됐다.

동쪽으로는 루마니아, 북쪽으로는 헝가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는 서쪽에 위치한다.

남쪽 국경은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에 접해있다.

공용어는 세르비아어. 면적은 7만7천474㎢다.

인구는 약 720만 명. 북부는 대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중부는 대륙성기후와 지중해성기후가 동시에 나타난다. 내륙국이라 인접한 바다는 없다.

세르비아 정교(84%)를 믿는 이들이 다수고, 소수의 가톨릭신자(5%)와 무슬림(3%)도 존재한다.

바로 이 `종교적 다름` 때문에 불과 20여 년 전 참혹한 학살과 끔찍한 내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용되는 화폐는 디나르(Dinar). 1디나르는 한국 돈 약 10원이다. 간단한 생활용품과 식사비용은 한국에 비하면 저렴한 편.

샌드위치와 주스를 점심으로 먹는다면 4~5천 원 정도로 해결이 가능하다. 포도주 한잔을 곁들인 저녁식사도 2만 원이면 즐길 수 있다.

수도는 베오그라드(Beograd). 세르비아인(82.9%)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적은 수의 헝가리인(3.8%)과 보스니아인(1.8%)이 함께 생활한다.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거리에선 집시(Gipsy)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세르비아인의 평균수명은 73세.

앞서 간략히 언급한 것처럼 1998년 코소보 자치주에서 세르비아 정부군이 무슬림인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코소보 사태`가 일어나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몇몇 강대국들이 알바니아계의 독립을 지지했고, 코소보는 2008년 2월 분리·독립선언을 했다.

학살과 내전을 겪었다는 어두운 과거 때문에 베오그라드와 노비사드 등 세르비아 도시를 돌아다닐 때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굳이 어깨 움츠리고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자가 만난 대다수의 세르비아인들은 쾌활하고 `쿨`했다. 도움을 청하는 관광객이나 여행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해를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