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황홀명지현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소설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11년간 문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해온 작가 명지현의 두번째 소설집`눈의 황홀`(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와 방송사 다큐멘터리 작가로도 십수 년간 일해온 이력의 소유자답게 명지현은 다채로운 소재와 과감한 묘사로 `맵고 독하지만 중독적인 이야기`를 구사해왔다. 그는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2009년 `작가선언69`에 동참해 용산참사 현장에서 1인 시위를,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릴레이 단식을 하는 등 구체적 실천을 꾸준하게 이어온 작가로도 유명하다. “작가란 기본적으로 서러운 자들의 편”이라는 신념과 “머릿속에 다른 세계가 있어, 글을 쓸 때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만의 개성과 창의력이 만나 명지현의 소설 세계에선 진흙 위에 황홀이 핀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런 삶 속에서도 `찰나의 희열`, 눈이 시릴 만큼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명지현 소설은 발견하고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만들고, 부수고, 또 다시 궁극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매진하는 `호모 파베르(만드는 자)`들, 그중에서도 자기 삶에서 주체성을 되찾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용감한 존재들의 이야기가 단연 돋보인다.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우리의 오늘 앞에 명지현이 펼쳐 보이는 여덟 개의 `다른 세계`, 빛나는 생의 황홀이 열리기 시작했다.

명지현은 창작 욕망에 들린 예술가-장인들의 뜨겁고 맹목적인 열정,`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처절한 지향을 오랫동안 공들여 묘사해왔다. 전작들에서 벌레들이 만드는 빛의 회오리를 보겠다고 눈 속에 벌레를 키우다 시각마저 포기해버린 도예가(`충천`)나, 매운 음식에 조금씩 독 가루를 넣어 사람을 홀리는 치명적인 맛을 내는 덕은(`교군의 맛`)이 보여준 예술가들의 광기(狂氣)는 이 작품집에서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표제작 `눈의 황홀`에서는 할머니·어머니·손녀로 이어지는 화장(花匠) 삼대가`진정한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매진하다 못해 `저승에나 가야 본다는 천상의 꽃`을 보려고 자기 목을, 심지어 딸·손녀의 목까지 조르는 괴기한 집착을 다룬다. 지옥에 살더라도 끝내 이루고 말 어떤 경지를 향한 지독한 갈망은 읽는 이를 매료시키고 뜨겁게 한다.

작가는 유기된 아이(`실꾸리`), 비혼모(`구두`)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흙과 실리콘 뼈로 만들어진 인간(`흙, 일곱 마리`)이나 김유정 로봇(`단어의 삶`)처럼 비(非)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 빼앗긴 존재들을 이야기 주체로 등장시킨다. 특히`흙, 일곱 마리`에 등장하는 흙-인간들은 전쟁터에 팔려 나와 인간 살상 기계로 소모되던 중 동기들과 다시 모여 흙-고양이로 새로 태어나는데, 이를 통해 하찮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을 함부로 학대하고 조종하려드는 문명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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