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성 우

1

내가 움직일 때마다 분비물을 흘리는 것은, 배춧잎에 붙어있는 솜털이 내겐 덤불이기 때문이다.

2

사내가 집을 나선다 저 사내는 별을 두려워하는 달팽이다 다행히 오늘은 햇살이 비춰지지 않는다 아니 이젠 비춰진다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사내에겐 꽃상추밭 같은 공원이 생겼으니까, 실직한 저 사내의 딱딱한 집 속에는 물렁물렁한 아내가 산다 건들기만 하면 젖무덤이 금세 봉긋해지는 그녀는 하루 종일 통조림용 마늘을 깐다 그런 이유로 사내의 눈이 매웠을까 사내가 눈을 훔치며 나간 골목이 축축하다

이 시에서 달팽이는 실직한 사내를 일컫는다. 달팽이가 지나간 길이 축축한 것은 일자리를 잃은 연유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종일 통조림용 마늘을 까는 아내가 있고. 마늘 냄새에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는 사내가 있는 어둡고 답답한 풍경을 본다. 구조조정의 파고가 높은 우리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아픈 풍경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