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택

트럭 앞에 속도 하나가 구겨져 있다

부딪혀 멈춰버린 순간에도 바퀴를 다해 달리며

온몸으로 트럭에 붙은 차체를 밀고 있다

찌그러진 속도를 주름으로 밀며 달리고 있다

찢어지고 뭉개진 철판을 밀며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는 유리창을 밀며

튕겨 나가는 타이어를 밀며

앞으로 앞으로만 달리고 있다

겹겹이 우르러진 철판을 더 우그러뜨리며 달리고 있다

아직 다 달리지 못한 속도가

쪼그라든 차체를 더 납작하게 압축시키며 달리고 있다

다 짓이겨졌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속도가

거의 없어진 차의 형체를 마저 지우며 달리고 있다

철판 덩어리만 남았는데도

차체가 오그라들며 쥐어짠 검붉은 즙이 뚝뚝

바닥에 떨어져 흥건하게 흐르는데도

속도는 아직 제가 멈췄는지도 모르고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 상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현장을 목도한 시인은 가공할만한 속도가 빚어낸 폭력성과 비극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파괴된 차량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비인간적인 세계의 참혹성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속도의 파괴성은 인간을 마비, 중독시키고 끝내는 엄청난 비극에 이르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