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강일 서울대 강사

한 해가 시작되면 으레 계획을 세우게 된다. 물론 그 계획은 어긋나거나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느슨하고 모호하게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 같다. 정유년에 내가 세운 계획은 여행, 글쓰기, 몸에 관한 것들이다.

여행계획은 이렇다. 알래스카 여행, 동유럽 여행, 그리고 국내의 더 많은 곳 다니기. 이런 것들은 돈과 시간이 있으면 되는 것이니 크게 어렵지는 않겠다. 그리고 글쓰기 계획은 논문 쓰기, 예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책 출판하기, 지면을 좀 더 넓혀 다양한 글쓰기다. 덧붙여 더 많은 강의를 했으면 좋겠고, 삶도 조금 여유로워지면 좋겠다. 이런 것은 지금 상태에서 조금 더 노력을 하면 될 테니까 크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정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주로 내 몸과 관련된 것들인데 살을 파격적으로 빼고, 금연을 하고, 술을 줄이고, 운동 시간을 늘리는 것들이다. 금연을 하려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글을 조금 덜 써야 한다. 무엇보다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술을 마시면 꼭 담배 생각이 나니까 말이다. 술을 줄이려면 술을 마시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있을까, 벌써 걱정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술을 마시지 않으면 뭘 하지?

오랜만에 만났으니 당구나 한 게임하지 않겠나?

무슨 당구인가? 나는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수영이나 하러 가세.

허, 이 친구 많이 변했군. 수영복이 없으니 그건 어렵겠고, 10km 달리기를 하는 건 어떤가?

아주 좋은 생각이네.

자, 그렇게 해서 공원을 한 두 바퀴 돌았다고 치자. 그 다음엔 뭐하지?

덕분에 운동 잘 했네. 그럼 다음에 만나면 히말라야나 한 번 정복해보는 게 어떤가? 라고 말하고 헤어질까? 아니지, 열심히 운동을 해서 땀을 뺐으니 술 생각이 더 간절할 테고, 밀린 이야기도 있을 테고, 결국 이래나 저래나 술집으로 가게 될 것이 뻔하다. 술을 줄이지 못하니 금연을 할 수 없고, 더불어 살을 뺄 수도 없다. 술만 해도 열량이 높은데 안주까지 먹어야 하니 살이 안 찔래야 안 찔 수 없다. 대략 난감이다.

왜 나의 근사하고 멋진 계획들은 항상 이렇게 어긋나는 걸까. 혹시 생각해보셨는지? 물론 의지가 약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자면,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조금 안심이 되셨다면 좋겠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다른 사람들도 계획을 잘 못 지킨다고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주위를 둘러보시라. 계획을 지킬 만큼 의지가 강한 사람은 열에 하나, 백에 하나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럼 다시, 왜 우리의 계획은 일그러지기 일쑤일까?

 

▲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갔었다. 형이 1년 동안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조카는 어른이 된 듯했다. 저 넓고 막막한 바다 앞에서 태호는 아빠가 없었던 시간을 회상하듯 바다를 바라보며 다만 오랫동안 서 있었다. 녀석의 삶이 제주도의 맑은 바다처럼 맑고 푸르길 바란다.
▲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갔었다. 형이 1년 동안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조카는 어른이 된 듯했다. 저 넓고 막막한 바다 앞에서 태호는 아빠가 없었던 시간을 회상하듯 바다를 바라보며 다만 오랫동안 서 있었다. 녀석의 삶이 제주도의 맑은 바다처럼 맑고 푸르길 바란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나`는 `계획을 세우는 나`와 `실천하는 나`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는 나`는,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이상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계획을 짠다. 일주일에 3일은 운동을 하겠다, 술은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겠다, 집에 돌아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찍 잠들어 일찍 일어나겠다, 와 같은 계획 말이다. 하지만 `실천하는 나`는 실제적인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한다. 현실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널려 있고, 그것들은 또 뒤엉켜 있다. 계획할 때는 이런 복잡한 것들을 고려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계획은 일그러지고 어긋나고 종국에는 폐기처분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고려해서 계획을 세우면 되지 않을까?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는 어디까지나 미래니까 말이다. 현실에서 가능한 모든 일을 고려하여 계획을 세운다면 어떨까? 지금 나의 삶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계획이 세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계획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세우는 것인데, 현실을 모두 고려했으니 달라지지 않을 것은 뻔하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나의 의지에만 의존하지 않고, 계획을 실천하기 적합하도록 나의 주변을 바꿔야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일찍 일어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알람, 이를테면 제대로 끌 때까지 도망 다니는 알람이라든지, 30회 아령을 해야 꺼지는 알람 같은 것들을 준비하면 된다. 또 술을 줄이고 싶다면, 나의 계획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소에 자주 술을 마시는 친구나 동료와 함께 이런 계획을 세운다면 실천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러니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계획을 세워서 삶의 변화를 주고 싶다면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계획이어야 한다는 결론 말이다. 그렇게 될 때 계획은 지켜지고, 나의 삶도 비로소 변화하게 된다. 나는 나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나와 맞닿아 있는 것들 역시 나의 일부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시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 곧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 말이다.

나의 계획이 나의 주변을 변화시키고, 그런 식으로 나가다보면 우리나라 전체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그런 것을 작년에 경험했다. 광장에 모인 `촛불`이 그 증거일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명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그 후 다시 10년 동안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최고로 높은 국가가 되었고, 소득불균형 현상도 더욱 심해졌으며, 삶에 대한 만족도도 최하권으로 떨어졌다. `헬조선`, `흙수저`는 현재의 우리나라를 잘 보여주는 말들이다.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된다면 나의 삶도 좋아질 것이다. 반대로 나의 삶이 좋은 쪽으로 바뀐다면 우리나라 역시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댈 것은 국가가 아니라 바로 `나`인 것 같다. 그러니 새해에는 꼭 좋은 계획을 짜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나`의 주변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길 바란다. 그러할 때 `나`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조금씩 바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