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 태일

도마 위에 널브러진 돌고래를 잡고 있다. 시커먼 불감증을 난도질하고 있다

잔기침에 시달리다 스물스물 등이 가려웠다가 빈혈성 어지름을 앓다가 우울증 자폐증 소갈증에 시달리다가 바람난 코스모스 여윈 발목이다가 갑상선호르몬이 항진해 조급증에 시달리는 나목이다가 문득 토담집 툇마루에 앉아 봉선화 꽃물들이던 정겨운 햇살이. 그 햇살이 퇴색한 흑백사진을 닦고 있다, 낡은 망막을 닦고 있다

늦가을 무서리에 묻어온 환청을 닦고 있다.

꽃다운 청춘의 시간이 있었다. 서랍 속이나 오래된 사진첩 속에는 곱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길거리의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나 칙칙한 빛깔의 플라타너스 잎들이 지듯이 그 고왔던 시간들은 흘러가버리고 불감증 잔기침 빈혈성 어지럼증 우울증 자폐증 소갈증 같은 불청객이 스며들어 힘들기 짝이 없는 갱년기를 맞는 것이다. 시인은 늦가을 무서리 내리는 때에 힘들고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는 이 땅의 여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