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어제는 안산에서 사월 동인 모임이 있었다.

동인 가운데 한사람 김명철 시인이 안산에 살면서 죽집도 하고 아들 바울을 위해 커피숍도 냈다. 거기 엄청난 횟집이라고 있다 해서 거기서 세시부터 좌담도 하고 회도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방담도 나눴다.

집에 돌아오니 열두시가 가까웠는데 다음날은 장흥에 가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지만 요즘은 자명종 없이도 잘 일어난다.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에 눈이 떠져 엎치락뒤치락 하다 여섯 시 반쯤 일어나 대충 씻고 일곱 시 출발이다. 장흥 가는 고속버스는 센트럴시티 호남선 고속버스 정류장에 가야 한다.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철 역에 도착한 게 일곱 시 사십오분. 여유 있게 나왔다 했건만 아메리카노도 사고 파리바케트에서 평소에 먹지 않는 샌드위치도 사고 이만사오천원 하는 버스표도 사서 2번 홈으로 나와보니 출발이 겨우 4분 남았다.

다섯 시간이나 걸린단다. 하지만 내게는 박미하일의 장편소설 “밤, 그 또다른 태양”이 있다. 첫 페이지를 넘길 때부터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다. 하지만 요즘에는 달리는 버스에서 책 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책도 보고 인터넷도 보고 생각도 하는 사이에 버스는 금방 탄천 휴게소에 정차하는데, 15분을 쉰단다. 버스에서 내려 할일없이 어슬렁거리는데, 뻥튀기 기계가 있다. 펑펑 하고 터져나오는 소리와 함께 쌀, 밀 등속을 섞어 한줌 집어넣은 것이 뻥 튀겨 나오는 게 구경하기 좋다.

벌써 아홉시 오십 분. 버스는 또 달리기 시작하는데 첫번 달릴 때보다 견디기 힘들다. 겨우겨우 버스 안 스팀을 참고 버티는데 두 시간 남짓을 달려서야 영암 터미널에 버스가 선다.

아하. 여기는 서울식당이라고 생막걸리 파는 집이 있었다. 염치불구 한 병 삼천원 짜리를 사서 차안에 들고 들어와 아메리카노 빈 컵에 따라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안정된다. 알콜 중독 증세다.

여기서부터 장흥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장흥 하면 세상 떠나신 이청준 선생, 또 한승원 작가, 그리고 또 천관산 억새가 있고 정남진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영치금을 들고 면회를 간다. 이곳 호남 아래까지 오면 건물들은 오래 되고 시설은 적고 말씨들은 한결 느려진다.

장흥 버스터미널에 내린 게 열두시 반 조금 넘었다. 잠깐 쉰다. 여기서 택시를 타야 한다고 했다. 터미널 뒷편으로 나가니 음식점들, 생선가게인데, 군청 소재지 거리같지 않게 소박하다. 여기는 국회의원 사무실도 먼지 앉은 2층짜리 버스터미널 2층에 있다.

택시를 타고 이제 그곳엘 간다. 옛날에 대학 2학년 때 와보고 처음보는 시설. 깨끗하다. 친절도 하다. 대신에 접견실에서 촬영, 녹음은 금지. 서울에서 왔다 하면 5분 더줘 20분 면회. 나온 얼굴이 깨끗해서 좋다. 마치고 나오니 두시 이십 분. 하루는 아직도 길게 남았다.

내 발걸음은 남은 몇 시간의 낮을 소비하기 위해 정남진으로, 장흥 무슨 다리 건너 토요시장으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갔다 건너올 즈음 석양빛이 산등성이에 걸렸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제도와 관습의 울타리 경계 안과 바깥에 위태롭게 걸려 있다. 누군들 조심하지 않으랴만 시운이 나쁘거나 시대가 마음을 먹으면 위험을 벗어날 수 없다.

문학을 하는 이 또한 잘못을 범함이 없지 않겠지만, 때로는 그것이 큰 화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다섯 시, 이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내일은 또다른 몫의 일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