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증 식

마른 잎 떨구고

알몸으로 우뚝 선 나무들 보며

당신 생각합니다

맨몸으로 서니 저리 꿋꿋합니다

서리 내려도 춥다 하지 않고

눈덩이 짓눌러도 울음 한번 없으니

사백 년 넘게 동구 밖 지키고 선

당신은 저 당산나무입니다

언젠가 당신은

내가 뭘 한 게 있냐 말하셨지요

더러는 가슴 찍찍 쪼개

하얗게 불살라버리고 싶을 때

왜 없겠냐고도 하셨지요

오늘도 바람 앞에 버텨 선 당신

그렇게 꾹꾹 뭉쳐 옹이를 키우고

봄이 오면 새 잎 툭 틔워낼 당신

허전한 내 곳간 속에서

늘 옷을 벗고 옷을 입는

당신, 당신

동구 밖에서 마을을 지키고 선 당산나무는 어른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겨울의 북풍한설을 고스란히 맞으며 온갖 시련을 견디고 견디는 그 나무는 어른 중에도 어른이다. 마을의 모든 역사를 품고 묵묵히 세월을 건너가는 그 나무에도 봄이 오면 새순이 돋고 여름엔 풍성한 잎새들을 피워올려 마을과 함께 세월을 건너는 것이다. 넉넉한 오지랖과 그윽한 그의 품은 이 땅의 진정한 아버지, 어머니가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