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나라는 어수선하고 그 틈을 타 생활물가가 올랐다. 그래선지 거리에 오색 불빛과 캐럴송이 희미하다. 토요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예고되어 있다. 트리 전구 대신 광장의 촛불이 도시를 가득 메울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자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개사한 캐럴송을 부르며 성탄을 맞이할 것이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성탄 메시지다. 하늘 영광이야 사람들이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찬란하고 위대하다. 땅의 평화가 우리들 몫이다. 그런 면에서 촛불 집회는 성탄의 의미를 빛나게 한다. 촛불 집회도 붐비고 술집과 레스토랑, 호텔, 펜션도 붐빌 것이다. 상업과 쾌락에 치우쳐 세속의 이벤트 데이로 변질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것도`땅에는 평화`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나는 방탕과 유희쯤이야 예수님께서도 넉넉히 기뻐하시리라 생각한다. 나는 예수님이 아주 `쿨`한 분인 줄로 믿는다.

그러나 나 혼자 누릴 때보다 이웃과 함께 나눌 때 평화는 널리 퍼진다. 얼음을 녹이고 어둠을 밝히는 건 촛불처럼 작은 마음들이다. 자원봉사나 성금 기부는 대단한 실천이다. 꼭 봉사나 기부 아니더라도 평화를 실천하며 이웃과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성탄전야 하루만이라도 배달 음식 그릇을 설거지해서 내놓는 것이다.

택배 기사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분리수거를 좀 더 꼼꼼하게 한다거나 차를 벽면에 바짝 붙여 세우는 것도 작은 실천이다.

20대 때 크리스마스이브는 친구들과 진탕 마시고 노는 날이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온 세상 떠들썩한 날 방구석에 앉아 티브이 보고 화투패나 맞추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엄마는 일 나가고, 동생은 나가 놀고, 나마저 밖으로 나돌면 두 분이서 참 외롭겠다 싶어 언제부턴가는 매년 성탄전야에 꼭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사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초에 불붙이고 소원도 빌고 했다. 물론 그러고는 다시 밖에 나가 실컷 놀았다. 이젠 그럴 수도 없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안 계시고, 할머니는 앞을 못 본다. 기쁜 날 가족과 함께 하는 것도 `땅에는 평화`다.

머리맡에 양말 걸고 자는 짓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했던 것 같다. 산타클로스가 엄마라는 사실을 눈치 챈 건 그보다 앞서서다. 유치원 겸 태권도장 다니던 일곱 살 때는 산타로 분한 원장에게 완전히 속아 “너 만날 동생 괴롭힌다며?”하는 말에 오금이 저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미국 프로레슬링에 빠져있던 열 살 무렵엔 엄마 산타가 머리맡에 둔 피규어 선물이 맘에 안 들어 심통 났다. 정의의 사도 헐크 호건이 아니라 비열한 악당 홍키통크맨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고르고 사면서 흐뭇했을 엄마 얼굴을 20년도 더 지나서야 겨우 그려본다. 그때 엄마와 지금 엄마, 마음도 표정도 그대로인데 주름살과 흰머리가 다르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부모들은 애들 잠든 사이 까치발로 몰래 다가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둘 것이다. 산타 옷 입고 수염 붙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흥이 많은 집이라면 애꿎은 애완견이 루돌프 용역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 어린이들의 판타지를 위한 일이다.

그러나 어른들도 아이처럼 꿈꾸고 소망할 수 있다. 나는 캐럴송 중에서 나탈리 콜의 `Grown-up Christmas list`를 좋아한다. 국내외 여러 가수들이 불렀지만 김효수가 부른 것을 특히 즐겨 듣는다.

말 그대로 `어른의 크리스마스 소원 목록`인데, “고통 받는 삶이 없기를, 전쟁도 없기를, 시간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모든 사람이 친구를 갖고, 정의는 항상 이기며,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노래다. 이 마음이야말로 `땅에는 평화`다.

이 땅의 권력자들은 어떤 성탄 소원을 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기를` 하고 기도하면 곤란하다. 아마 뭘 빌어도 안 이뤄질 게 분명해 보인다. 산타할아버지는 누가 착하고 나쁜지 알고 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