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현 편집국장
▲ 임재현 편집국장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지인들과 모처럼 오붓한 자리를 함께 하면서 요즘 사태에 대한 동북아 주변국들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라는 두 군데였지만 일본에서는 현지의 한국인들을, 한국에서는 출장 중인 중국인 사업가를 만났으니 일본은 장소를, 중국은 국민을 보낸 셈이 됐다. 어찌 됐거나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촛불집회 현장의 치열함을 생각한다면 최근 시국을 한가한 노변정담(邊情談)의 화제로 삼기에는 부적합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의 중요한 현안을 비롯해 모든 이슈가 국가적 쟁점 하나에 삼투되고 있는 요즘 하루하루는 지역신문 제작 참여자에게 고역의 연속이었다. 지친 자에게 간만에 주어진 담소의 기회는 낙담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먼저 두 일본 지인과의 자리는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전 긴자(銀座)에서 마련됐다. 모두 한국인인 이들 중 한 분은 현재 국제기구 소속으로 일본에서 30여 년째 거주해온 60대 경영학 박사이며 한 명은 한국 대기업의 일본 법인 50대 동갑 간부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화제는 대통령 사태로 모아졌다. 박사는 한 일본 일간지의 기사를 소개하며 운을 뗐다. `한국인들이 촛불집회에 몰리는 건 일본처럼 `마츠리`(祭, まつり)가 없기 때문이다. 평소 축제나 광장에 참여할 기회가 없으니 억눌린 열기를 발산할 기회로 촛불집회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두 나라의 문화 차이를 강조하는 듯 하지만 행간에 절묘한 폄하 의도가 엿보인다. 마츠리가 일본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 마당이 됐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 난센스다.

하지만 한 중의원(重議員)과 나눴다며 전해준 대화는 귀담아 들을 대목이었다. 별세한 형과 함께 유력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이 중의원은 오랜 한국인 후배에게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국가적 위기에서 여당과 야당, 어디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 사태를 안정시키는 시스템이 없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고도 이런 꼬인 상황이 대외적으로 얼마나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파벌과 거물에 의해 판도가 좌우되는 일본 정치를 고려하면 그대로 수용하기엔 부족한 측면이 보였다. 하지만 촛불 현장을 누비며 풍각쟁이나 다름없는 무책임한 선동을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낯 뜨거움을 감수하고도 곱씹어야 할 충고였다.

또 한번의 자리는 탄핵안 국회 통과 이후 포항의 한 과메기식당에서 였다. 중국 장춘시 출신인 한 50대 사업가가 일행에 포함됐다. 자리가 무르익자 그는 “상당수 중국인은 아직도 `한국 대통령 누나`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박 대통령은 과거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를 읽으며 어려운 시기를 견뎠다”는 잡지 기고와 칭와대학 중국어 연설 등이 알려져 현지에서 큰 호감을 얻은 바 있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한 중국인들에게는 이웃나라에서 지금 작동되고 있는 국민의 정치적 저항 기제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사드 배치를 비롯해 양국의 외교 갈등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우호관계는 여전히 소박한데서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2016년의 힘겨운 연말을 보내며 우리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송년회를 비롯해 이런저런 자리들에 참가하게 된다. 단연 화제는 탄핵 정국일 것이다. 촛불집회 참가의 격정도 나눌 것이다. 하지만 소시민의 한잔 술에 오늘의 오욕과 다짐을 흘려보내지는 말자. 촛불의 긍지가 투표의 손길로 이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치욕은 잉태된다. 이 고통을 겪는 지금은 다행히 연말이다. 청신한 기풍으로 새해를 맞자. 대한민국은 지금 알을 깨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자.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에 국가, 사회, 자신을 성찰하지 않은 인과응보이다. 때마침 다가오는 닭의 해.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2017 대한민국 줄탁동시(茁啄同時)의 원년`이 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