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연합회 본부가 포항에 온다는 희소식이다. APCTP는 지난 4일 호주 브리즈번에서 개최된 제9차 이사회에서 본부를 포항에 유치하기로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기초과학을 현저히 무시하고 있는 나라에 세계 3대 기초과학단체가 오게 된 것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지난 1989년에 설립된 AAPPS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호주 등 아태지역 16개 국가 17개 물리학회가 가입돼 있다. 미국물리학회(APS), 유럽물리학회(EPS)와 함께 세계 3대 물리학회 연합학술단체로 물리학 연구, 교육 및 아태지역 학술 협력에 공헌하고 있다.

AAPPS본부는 정기학술대회인 APPC개최·운영뿐만 아니라 각 학술분과에 연례 학술대회 개최를 지원하며 소식지 발간, 홈페이지 운영, 195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양첸닝상(C.N. Yang Award) 수상자 선정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AAPPS 본부 유치는 포항시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초과학 중심으로 자리매김함은 물론, 기초과학 역량을 인정받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분야 현실을 대관(大觀)해보면 그저 흐뭇한 마음에 머물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최근 우리의 과학정책은 단기간에 가시적 사회·경제적 성과를 올릴 수 있는 현란한 명칭의 대형 국책과제로 몰아가고 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보다는 기존의 착상을 가져다가 개선하거나 환경에 맞춰나가는 각색에 치중함으로써 진정한 연구영역을 질식시키고 있다.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는 일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올해 과학 분야에서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쾌거를 이뤘다. 일본은 지금까지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그 가운데 22명이 과학 분야에서 나왔다. 이번 수상으로 일본의 기초과학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R&D)은 매년 늘어 19조원을 넘는데 고작 그 6%만 기초과학 연구과제에 배정된다. 그 비중이 47%에 이르는 미국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나마 지원되는 기초과학분야 연구비도 정부지정 과제가 대부분이고 열에 여덟은 5천만원 이하 쥐꼬리 지원이다.

기초과학이 튼튼하지 않은 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우선 먹고 살자고 일할 소(牛)를 잡아먹는 어리석은 짓`을 거듭하고 있다. AAPPS 포항 유치가 정치권과 공무원을 필두로 그릇된 인식을 일신함으로써 대한민국을 `기초과학 강국`으로 키워내기 위한 야심찬 계획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기초과학 발전의 가치를 꿰뚫어보고 매진했던 600년 전 위대한 지도자 세종대왕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부끄럽게 살고 있는지 치열한 반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