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br /><br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가 쓴 비극 작품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의 독백중 가장 잘 알려진 대사다. 배경은 이렇다. 햄릿의 아버지는 덴마크의 왕이었는데, 동생 클로디우스에 의해 수면 중 독살당하고 만다. 심지어 그의 아내 거트루드는 자신을 독살한 동생과 결혼까지 한다. 독일 유학중이던 햄릿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귀국했으나 삼촌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후 야밤에 유령으로 등장한 아버지가 햄릿에게 복수를 요청한다.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에 모욕감을 느끼지만, 복수를 하는 것이 옳은지, 차라리 이 모든 상황을 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망설이는 대목이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는 인간의 여린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명대사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촛불민심 정국은 `하야냐 탄핵이냐`기로에 서있다. 박 대통령이 3차담화에서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를 국회의 결정에 맡긴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야단난 것은 탄핵 찬반으로 입장이 갈려있던 새누리당이다. 탄핵을 주장해온 새누리당 비주류 일부에서 “대통령이 국회결정에 따라 퇴진하겠다는데, 탄핵절차를 강행하는게 맞느냐”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새누리당은 1일 열린 의총에서 `4월 대통령 퇴진, 6월 대통령 선거`를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했다. 반면 야 3당 대표들은 “임기 단축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며 “9일 탄핵을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쨌든 촛불민심을 해소할 방안은 두 갈래 길 중 하나로 좁혀졌다. 우선 `4월 하야, 6월 대선` 방안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의 구체안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가 정하는 방안에 따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야당과의 협상만 남은 셈이다.

여당이 제안한 퇴진안이 야당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탄핵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야당과 여당 비박(非朴)계가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해 헌법재판소에 대통령의 진퇴를 맡기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르면 내년 3월, 늦어지면 내년 8월쯤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된다. 문제는 국회에서 부결되거나 헌재가 기각할 경우 박 대통령은 그대로 임기를 계속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위험부담을 감안해서인지 여당과 비박계, 야당 일부 의원들은 탄핵보다는 정치권 합의에 따른 `질서 있는 퇴진`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여야 협상으로 대통령 퇴진을 합의해 `하야` 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고, 안 되면 `탄핵`으로 가자는 것이다. 다만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 방안에는 비박계도 반대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현행 헌법에 비춰 가장 헌법합치적인 대통령 퇴진 방식은 `탄핵`이다. 탄핵제도는 고위공직자에 의한 하향식 헌법침해로부터 헌법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여야가 합의에 성공하면 대통령은 하야하게 된다.

하야는 그 절차 등이 헌법이나 기타 법률에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하야`가 초헌법적인 퇴진방식은 아니다. 대한민국 현행법 어디에도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규정이 없고,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헌법위반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로 퇴진, 즉 하야할 경우와 탄핵으로 물러날 경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크게 달라진다.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서 연금 등 각종 혜택을 받는다. 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을 둘 수 있고, 사무실 등이 제공된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난다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탄핵 결정을 받아 물러나면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모든 예우를 받을 수 없게된다. 물론 하야해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탄핵 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호를 제외한 모든 혜택이 사라진다.

촛불민심에 불타오르는 한달여의 밤을`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망설여왔을 박 대통령의 처지가 마냥 안쓰러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