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현 편집국장
▲ 임재현 편집국장

측근을 둘러싼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에게는 재앙이다. 우병우와 최순실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골칫거리는 `우순실`이 나라를 말아먹는다는 신조어와 자조를 낳고 있다. 우순실. 1982년 대학가요제의 화면을 타고 영일만 한 켠에 흘러온, 비음 섞인 대학생 가수 누나의 `잃어버린 우산`은 떠꺼머리 중3 소년의 감성을 한참 동안 흔들어 놓았던 기억이 있다. `콘서트 7080`을 통해 다시 컴백한 우순실은 노래하는 그 자신이나, 듣는 나 자신이나, 흘러간 세월을 잊게 한 채 여전히 34년전 멘탈을 되살려 줬다.

지난주 퇴근 채비를 할 때쯤 난데없는 비가 내리길래 우산을 찾다가 `요즘 나라꼴`이 오버랩되면서 그 이름이 떠올랐다. 역시 연상은 사회적 파동이 있는지 결국 그 우순실이 요즘 피곤해졌다. 포털을 뒤져보니 멀쩡한 가사까지 패러디하는 모양인데 한마디로 `그대 사는 작은 섬으로 나를 이끌던 날부터` 대통령에게 속았다는 얘기다. 과장 섞인 단정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지만 돌이켜본 박근혜 정부는 시작이 상당히 무거웠다. 출범 당시부터 청와대를 비롯한 인사 난맥으로 윤창중과 김행을 제외하면 변변한 `팀원` 조차 없었다. 신뢰를 주는 여성 대통령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던 `수첩`은 이내 실망의 대상이 됐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의 원년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10월 고용률 65.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체감경기는 냉기`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2014년 1월의 대통령 신년연설은 `통일 대박`으로 상징되는, 그야말로 국민적 대박을 낳았다. 진보든, 보수든, 이념의 장벽을 넘어서 저잣거리의 시쳇말이나 다름없는 단어를 통일이라는 묵직한, 하지만 못 푸는 숙제이자 골칫거리이기도 한 사회과학적 용어에 간단하게 대입시킨 대통령의 자신감은 국민을 열광시켰다. 2개월 뒤 통일의 선배인 독일로 날아간 한국의 대통령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또다시 드레스덴 선언으로 지성의 대통령, 오바마에게까지 울림을 줬다. 사회 전반에 새 정부의 출범 1년을 넘긴 즈음에 비로소 뭔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는 자신감이 무르익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봄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해 5월 터진 윤창중 사건은 독신의 여성 대통령 측근이,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성추문을 일으켰다는 세간의 비난이 상승작용되면서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대한 신뢰를 거둬갔다. 여러 정권을 대물림하며 오랫동안 잉태되던 불운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듬해 4월15일에는 세월호와 함께 나라도 심해로 가라앉았다. 11월말 시작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 문건 폭로 파동, 이른바 정윤회 게이트는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의 일단을 보여줬다. 그 이듬해엔 역병인 메르스가 닥쳤다. 되는 것이 없던 세월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병우요, 최순실이다. 여당 대표가 나서서 대통령의 결백함을 강변하며 `금쪽 같은 조카들마저 청와대로 들이지 않는다`고 떠벌린다. 국민은 믿지 않는다. 그런 철혈(鐵血)이 읍참마속(泣斬馬謖) 할 줄은 모른다며 실망을 넘어 분노할 따름이다. 차라리 국민들은 독신 대통령이 구중 침소에서 벗어나 얼음공주의 굴레를 털고 피붙이들을 가끔씩 만나 정을 나누며 덕치의 종요로움을 체감하기를 바란다.

386세대로서 대학을 다닌 나의 DNA 어느 언저리에는 1987년 체제, 직선제 개헌의 싱그러운 미풍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30년만의 개헌은 세월의 더께 탓인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온몸으로 마중하고픈 역사의 의무이다. 하지만 나라의 두 골칫거리를 해결해야 할 양손을 품은 채 유달리 뭉기적거리고 있는 그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니 한장의 카드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친박이 밀리면 안 되겠기에 우병우를 접을 궤가 담긴 산통(算桶)이나 만지작거린다면, 대를 이어 수호천사 같은 최순실을 그토록 지켜주고 싶다면 개헌이라는 우산, 대통령을 가려줄 우산은 국민이 거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