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대가 어울린 영주를 가다 1

▲ 무섬마을 전경.
▲ 무섬마을 전경.

인삼과 사과의 고장인 영주시가 최근 `힐링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본지는 수필가 손경찬 씨가 영주의 명소와 풍광을 둘러보고 기고한 기행문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낙동강이 부채꼴로 감싸도는
대표적 물돌이 지역 `무섬마을`

1983년 콘크리트 다리 건설 전까지
350년간 마을과 세상을 이어준
외나무다리 옛 모습 그대로

마을 내 100년 넘는 가옥도 16채
관광객에 개방해 문화재 선보여
고택 체험 숙소로 전국서 인기


산이 좋아 매 주말마다 산행을 즐기는 필자는 그간에 영주 소백산을 몇 차례나 다녀왔다.

소백산은 산 전체가 아름다워 사계절 절경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늦은 봄철, 남도의 산철쭉이 시들 때쯤이면 이곳 철쭉꽃은 만발하기 시작한다.

해마다 영주시가 주관하는 소백산 철쭉축제에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산행은 자연을 보고 배우는 게 즐거움이지만, 꼭 산이 아니더라도 때로는 계곡이나 아름다운 마을, 생각을 정제해주고 여유를 갖게 해주는 풍경들이 있으면 여행 삼아 자주 찾게 된다.

필자는 이번에 소백산과 부석사가 지역의 상징으로 우뚝 선 선비의 고장,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경북 영주의 볼거리를 찾아 하루 동안 보고 느끼며 걸었으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오래전에 지인으로부터 영주에 가면 명소가 다섯 곳이 있는데, 소백산과 부석사, 소수서원, 무섬마을, 풍기인삼시장이라고 했다.

 

▲ 철쭉이 만개한 소백산.
▲ 철쭉이 만개한 소백산.

그 당시에 필자는 소백산과 부석사, 소수서원 세 곳을 가보았으니 그 후에 기회를 만들어 나머지 여행 장소를 다녀왔고, 이 다섯 곳은 지금도 영주의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영주는 예로부터 교통도시다. 물론 서울을 기준으로 해서 영주로 가는 철로, 육로를 따지겠지만 영남권, 대구·경북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가는 길도 중앙고속도로가 나 있으니 교통이 편리하다.

하루 정도만 시간을 내면 영주의 명소를 두루 만날 수 있는데, 영주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옛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과 지혜를 배우고 느끼는 일도 좋은 일상이리라.

소개한 여행명소 중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를 먼저 가는 게 순로코스다.

영주IC에서 영주시로 빠져나와 25분 정도 가면 만나게 되는 자연과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드라마와 광고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영주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한때 세상을 만나는 유일한 통로였다.

꽃가마 타고 시집 올 때 한 번, 죽어서 상여로 나갈 때 한 번, 딱 두 번만 나갈 수 있다던 다리라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외나무다리는 1983년 이 마을에 콘크리트 다리가 생길 때까지 350년 가까운 세월을 마을과 바깥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었다.

내성천이 흘러드는 긴 모래사장과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마을 풍경이 눈 앞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 무섬마을 외나무 다리.

무섬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예천 회롱포 마을의 지형처럼 낙동강 지류가 부채꼴 모양으로 감싸 도는 대표적인 수도리 지역으로 40여 전통가옥들이 오순도순 지붕을 맞대고 살아가는 곳이다.

2012년 한국 관광의 별, 체험형 숙박부문에 선정된 선비촌의 실물 가옥 4채가 함께 자리한 물돌이 무섬마을은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로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 물 위에 떠있는 섬이라하여 수도리(水島里)라 불리어졌다.

무섬마을이라 이름 붙은 이곳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집성촌으로 마을이 이루어져왔다.

반남박씨 입향조인 박수가 마을에 들어와 건립한 만죽재를 비롯한 총 9개 가옥이 경북문화재자료 및 경북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고택들은 경북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인 ㅁ자형으로 옛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역사가 100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다.

몇 집을 빼면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물론, 비워진 문화재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이라 더 활기가 넘치고 아름답다.

마을 내 고택과 정자들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고풍스런 옛 향취를 풍기고,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로 이용되었던 외나무다리 또한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나볼 수 있어 마을의 대표 상징물로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아름답고 이색적인 풍경으로 말미암아 낮에는 외지에서 온 바깥사람들에게 마당을 개방해 속살을 훤히 보여주고, 밤에는 고택 체험을 위한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필자는 무섬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둑을 내려가 내성천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넌다.

넓은 백사장장과 얕은 강물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보니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가 드라마와 영화, 광고 속 아름다운 배경지로 선택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부지런한 손길로 다듬어놓은 소담스런 꽃 정원과 고색창연한 전통가옥이 어우러지는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눈앞에 전개된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삼면이 내성천에 접해있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필자는 이때까지 전국의 많은 아름다운 곳을 다녀봤지만 잘 어울리는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산수의 경치가 절경을 이루는 무섬마을의 빼어난 경치에 매료된다.

누구든 여기에 와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이 분위기에 빠져들리라 본다.

대강 마을 구경을 마치고나니 점심시간이라 무섬마을의 향토음식 골동반 전문인 식당에 들렸다.

골동반은 다름 아닌 비빔밥이다. 골동반에 대한 기록을 찾으면 1800년대 말 문헌 `시의전서(是議全書)`에 한자로 골동반(骨董飯)이라 쓰고 한글로 `부븸밥`이라 적은 기록이 있다.

즉, 이미 조선 초기부터 `골동`이란 단어가 쓰였고, 여기에 음식 이름이 붙여 19세기 이후 골동반이라 불렸다.

이 향토음식은 옛날 궁중에서 먹던 비빔밥으로, 특히 남은 음식은 해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여 음력 12월 30일인 섣달그믐날 저녁에 남은 음식을 모아 비벼먹으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명조 때(1550년)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선비정신과 유학을 일으키던 시절 골동반을 즐겼다한다.

굽지 않고 찐 간고등어, 3년 묵힌 된장으로 만든 찌개, 오곡으로 만든 숭늉, 수정과 후식 `무섬골동반`은 그 밥상을 토대로 콩나물과 자반고등어, 텃밭에서 가꾼 도라지, 머윗대, 다담이 나물 등 정성스런 식 재료로 만들었으니 정갈하면서도 맛깔 나는 상차림은 무섬골동반만의 특징이자 또 하나의 전통이 되고 있다.

맑고 깨끗한 음식, 한 끼의 식사 뒤에 찾아오는 진한 감동으로 마음의 휴식을 찾을 수 있는 맛집은 그리 흔하지 않으니 그래서 무섬마을에서는 음식은 입이 아닌 마음으로 먹는다고 하는 말이 나돌 정도다.

 

▲ 수필가 손경찬
▲ 수필가 손경찬

천혜의 자연 속에서 세월을 버텨온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차오르는데, 여름 꽃들로 아름다운 마을에다가 귀한 향토음식 골동반까지 맛보았으니 힐링 고장의 아련한 맛과 멋이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진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남았으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필자는 무섬마을을 노래해본다.

`내성천 강물이/ 그리움을 잔뜩 안고서/ 마을을 휘돌아 감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그곳/ 수도리에는 강 건너 바깥/ 세상을 잇는 다리가 있었고/ 사람들은 `외나무다리`라 불렀다.// 세상에 태어나/ 꽃가마 타고 시집 올 때나/ 죽어 상여로 나갈 때 한 번씩/ 딱 두 번만 나갈 수 있다던 다리/ 그 너머 무섬마을 어귀에는/ 예쁜 여름 꽃들이/ 소담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자작시 `무섬마을에서` 전문.

/손경찬<수필가>

    손경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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