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신문을 보니 석기시대에도 배를 만들었단다. 그 사연이 한 신문에 실렸다. 경남 창녕군 비봉리, 그곳이 불과 8천년 전만 해도 바다였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6천년 전에 만든 배가 진흙 속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되었다는 신석기 시대 나무배. 길이 310cm, 너비 62cm.

멋지다. 뭣보다 원시시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신석기시대라는 것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8천년 전에도 유지되고 있었다는 놀라움에, 돌을 다듬어 도구를 만들어 쓰던 그 시대에도 배를 만들 줄 알았다는 사실까지! 그것은 별다른 현대적 기구없이도 배를 만들어 바다에 떠 있을 수 있음을 말해주지 않나.

그렇잖아도 조만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 말이다. 학교 선생도 청렴해져야 한다는데 토를 달 생각없다. 강의를 하든, 발표를 하든 얼마까지만 받아야 한다는 것도 수긍할 수 있다. 적게 받아라 하는 것은 그렇다 치는데 이건 무슨 무시무시한 신고제란 말이냐.

사람이 몸을 움직이면 돈도 나오게 마련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나오지 않는 곳에 가도 전부 서식에 맞춰 신고하라는 것이다. 학교에 있으면서 바깥에 나가게 되니 신고하라 한다면 거기까지는 또 그렇다고 하자. 오늘 들으니 뿐만 아니라 기고한 것도 액수에 상관없이 신고해야 한단다.

경북매일신문에 기고하든, 경향신문, 문화일보에 기고하든, 어떻게 하는지 얼마나 받는지 `육가원칙`에 맞춰 보고 드려야 한단다. 이게 무슨 법이었나 고개 갸우뚱해진다. 나는 그것이 `김영란`이라는 여자분에 관한 법인 것은 알았고 인터넷을 통해 본명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길다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이 법은 내게 이동의 자유 제한법이요, 언론 문필 활동 자유 제한법이나 다름 없음을 알았다. 시 행사든 강연, 강의든 바깥 출입 안 하면 좋겠고, 신문이든, 어디든 안 쓰면 좋겠는데, 글쟁이, 문필업자가 그게 쉬운 일일까. 차라리 밥 먹지 말라는 것과 같다.

다니고, 쓰고, 그러면서 신고하면 그만 아니냐는 반론도 있겠다. 하지만 신고라니? 허가보다 나은 신고란 말인가? 글 쓰고 강의하는데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를 위해서라고 한다.

내가 이 못난 문필업에 들어선 것은 대학 선생이 되기 전이었다. 강단에 시간 단위로도 서기 전에 비평이라는 것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이제 대학 선생이니 내가 하는 모든 글이며 말이 전부 기관에 신고해야 할 것이 되었단다.

이런 부자유는 이제껏 살아 겪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제껏 편히 산 줄이나 알라는 뜻이렸다?

생각해 보니 최근 근 십 년 간 자유는 위축되기만 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지고한 가치로 여기는 자유건만. 부정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처럼 사사건건 신고하고 다녀야 하는 부자유는 감수해도 좋다는 말인가? 과연 이런 법이 사회를 깨끗하게 한다? 우리 사회의 부정이 과연 이런 그물로 잡힐 수 있는 것일까?

바다가 좋다. 경계도 없고, 금지도 없고. 소금물을 물삼아 먹을 수 있다면 물 위에 떠 바람을 쏘이며 물고기를 잡아 먹고 돌고래, 거북이랑 장난스레 사귀며, 바다에는 정말 금지라곤 없노라고, 하늘 달 별 해 구름 보며 즐거워나 할 일이다.

조금 큰 배를 만들고 싶다. 배 안에 좀 작은 나라를 짓고 싶다. 우선 신고하고 산에 나무를 베어오고 신고하고 나무를 바닷가로 실어나르고 신고하고 배 만들기에 착수하고 신고하고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가자. 그리고, 신고하고 나라를 하나 더 세우자.

거기까지 꽤나 골치 아플 것 같다. 번거롭고 귀찮은 일 투성이일 것 같다. 신고해야 할 일이 한둘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일단 나가기만 하면, 그러면 자유다. 자유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