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20대 국회에서는 예전 국회에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진풍경이 예사로 펼쳐진다. 국회의장의 개회사 파동으로 정기국회 개회가 늦어진다거나 사상 초유의 `국무위원 필리버스터`와 `여당발 국정감사 파행`이 벌어진 점, 야당출신 국회의장의 정치 발언에 항의해 여당대표가 단식투쟁으로 의장사퇴를 주장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20대 국회 진풍경 1호는 여당인 새누리당 주도의 국회일정 보이콧이었다. 새누리당은 지난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발언을 문제 삼아 의장실을 점거했으며, 국회 일정 보이콧에 들어갔다. 정 의장은 개회사에서 “고위 공직자가 특권으로 법의 단죄를 회피하려 한다”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판했고,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에 대해 소통 부재로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취지로 정부를 비판해 중립성 위반 시비를 낳았다.

진풍경 2호는 바로 `국무위원 필리버스터`였다. 지난 23일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야당이 추진하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을 어떻게든 미루고자 하는 새누리당의 `요청`에 맞춰 국무위원들이 답변시간에 장황한 답변으로 시간 끌기에 나서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국회법상 질문자의 발언 시간은 15분, 의사진행발언은 5분으로 제한되지만, 국무위원의 답변시간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20대 여소야대 국회의 새로운 풍경이었다. 진풍경 3호는 여당발 국정감사 파행이었다. 발단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에서 비롯됐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4일 0시 35분경 국회방송을 보던 국민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마이크에서 흘러나왔다”며 “(정세균 의장의) 그 발언은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둘 중에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내놔. 그래서 맨입으로, 그래서 그냥은 안되는 거지`라고 발언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즉각 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28일 단식농성중인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완전히 명문으로 하는 `정세균 방지법`이 가장 급하다”며 정 의장을 압박했다. 이 대표는 “국회의장이 탈당을 해서 중립을 지키라는 이유는 이런 여야의 대치를 중간에서 조정하고, 조절하고 협상을 유도하라는 것”이라며 “본인이 그런식으로 한쪽에 서서 `맨입으로 안된다`고 거래까지 할 정도로 국회법이나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 문제가 없다고 하는 인식 자체가 더 문제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 대표는 이날 방송클럽토론회에 참석, “정세균 국회의장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되는데, 지키지 않았으니 사퇴해야 된다”며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주요 안건을 단독 처리하고, 여당이 표결에 불참한 뒤 국회의장실을 점거하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기이한 현상이 새로운 풍속도가 되고 있다. 기존의 날치기 처리는 여당 몫, 국회 일정 보이콧과 점거 농성은 야당의 `전매특허`라는 공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다.

국감 나흘째인 29일에도 국감파행 정국을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정세균 국회의장은 완강하다. 정 의장은 전날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제시한 `유감 표명`을 전제로 한 중재안을 일축했다. 그는 “유감 표명할 내용이 없다”며 “지금까지 직무수행에서 헌법이나 국회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했다. 이에 맞선 새누리당은 지도부 전체가 이 대표와 함께 동조단식에 들어가는 한편 29일엔 정 의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새누리당과 정세균 국회의장간 힘겨루기는 지켜보는 국민들을 짜증나게 한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그것이 국민의 뜻임을 정치권은 벌써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