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요긴한 노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농작물을 망가뜨리고 가옥을 부수는 골치거리이기도 하다. 코끼리의 침범을 막기 위해 농장에 전기울타리를 설치해봐도 영리한 코끼리들이 큰 통나무를 들고 와서 전선을 때려눕힌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설치한 울타리가 무용지물이다. 이 문제를 기초과학이 해결했다. 코에 벌이 독침을 쏘면 코끼리가 기겁을 하고 다시는 그 근처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알아냈다. 그래서 농장 주변에 벌통을 놓아 양봉도 하고 코끼리도 쫓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냈다. 잉잉 벌소리를 내는 드론을 띄워도 벌침에 혼난 코끼리는 접근을 못한다.

기초과학은 당장 큰 돈을 벌어주지는 않지만`코끼리 코에 벌침`처럼 매우 유용한 지식을 제공해주고 큰 돈을 절약하게 한다. 기초과학에 힘을 많이 기울인 나라가 러시아다. 연방은 무너지고 경제는 망가졌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기초과학의 힘에 의해 러시아의 과학은 세계적인 존경을 받으며 `러시아를 떠받치는 힘`이 되고 있다. “훌륭한 농부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퇴비를 많이 쓰고,시원찮은 농부는 당장 눈앞의 과실을 위해 금비를 지른다”는 격언도 있다.

국내 저명 과학자 40명이 “기초연구과제에 대한 지원을 늘려달라”는 청원을 했는데 불과 4일만에 동참한 과학자가 250명으로 늘었고 앞으로 계속 호응이 이어질 것이다. 새로 서명한 과학자 중에는 하버드 의대 교수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구가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과학정책은 `실적주의 `위주다. 당장 큰돈 벌 연구결과를 요구한다. 과학자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의해 진행되는 연구를 지원하기 보다는 `국가정책 과제`에 지원이 집중된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바둑을 압도하자 불과 1주일만에 정부는 “2020년까지 1조원을 들여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동안 많은 연구팀들이 인공지능을 연구해오고 있었는데,그 연구성과들이 무시·배제되는 한심한 일도 벌어졌다.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전시성 성과물`을 내놓기에 급급한 정부의 조급증이 늘 문제다. 이번에 과학자들이 정부의 과학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그 불만의 폭발이다. “미국은 기초과학에 정부 연구비의 47%를 투자하는데 한국은 고작 6%에 불과하다. 선진국은 연구자가 연구 주제를 정하는데 한국은 정부가 정하고 과학자는 추종할 뿐이다”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카이스트는 최근 획기적 연구계획을 발표했다. “현재의 핫이슈가 아니고, 10년안에 상업화하기 어려운 주제를 정하라”는 것이다. `당장의 과실`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며 창의적 과제에 마음껏 도전하라는 것이다. 진정한 과학발전은 `기초 토양`을 비옥하게 가꾸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