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소로 변모한 독일의 도심 재생 현장

▲ 에센의 쫄페어라인

도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쇠퇴하고 낙후되는 지역이 생기는 등 사람의 삶의 흔적과 같이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도시마다 신도심은 눈에 띄게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구도심은 활력을 잃어 슬럼화 되고 있으며, 지자체마다 구도심 재개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대구경북기자협회(협회장 김철우)는 도시 발달과 산업의 변화 등으로 인한 도심지역 내 낙후된 구도심을 어떻게 개발해 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지 알아보고자 대구·경북 회원사들과 함께 독일 등 유럽 도심재생 선도도시들을 8일간 둘러봤다.

<편집자주>

에센의 버려진 탄광시설 쫄페어라인
바우하우스 양식 탄광 제반시설 보존
디자인 박물관·화랑·야외수영장 조성
관람객 150만명…유럽관광 필수 코스

뒤셀도르프 지하 터널미술관
도로건설 공사자재 창고로 쓰이다 폐쇄
뒤셀도르프 미대생 창작공간 활용 계기
2007년 전문 전시공간으로 새롭게 단장
회화·조각·사진 등 신진예술 교류의 장

성당을 서점으로 활용한 도미니카넨 서점
고색창연한 13세기 성당으로 들어가면
10여개 장엄한 아치형 기둥이 병렬하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 선정
전세계서 매년 70만명 찾는 관광 명소

우리나라의 도시재생은 2000년대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유명무실해진 뉴타운, 재개발·재건축의 대안으로 낙후된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의 새로운 제도를 제정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각종 정책 공모사업을 추진하면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은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다양한 지역자원을 활용해 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으로, 구도심의 슬럼화로 인한 다양한 불평등을 극복하고자 도시재생을 중요한 정책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재생은 현재 제도와 조직만 갖춘 실정이지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영국은 1980년대부터 정부기구와 보조금을 활용하고 있고, 독일은 1970년대 이후 구도심 도시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적 활성화와 공공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정책화하고 있으며, 미국은 1990년 이후에 주거부족, 빈곤, 위생 등의 도시문제를 해결하며 최근에는 중심시가지 활성화 사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가운데 독일 에센의 버려진 탄광시설인 쫄페어라인과 라인강변에 버려진 지하공간, 13세기 성당을 이용한 서점 등 구도심 내 폐허가 되고 버려진 산업시설을 문화·관광 인프라로 변모시켜 세계적인 명소로 부각되고 있는 독일의 도시개발 사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독일 에센의 버려진 탄광시설 쫄페어라인

독일은 1970년대 이후 구도심 도시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제적 활성화와 공공성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정책화하고 있다.

독일 서부지역 에센은 석탄산업 도시로 1950년대 중반 석탄 생산량이 1억2천500만톤을 기록했으나, 석유와 미국 석탄에 눌려 1980년에는 생산량이 6천910만톤으로 줄어드는 등 쇠락의 길을 걸었고 결국 1986년 문을 닫았다.

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던 석탄산업의 쇠락으로 65개에 이르는 건물, 200개가 넘는 설비, 약 2.7㎞ 컨베이어 시설과 13.2㎞인 파이프는 에센의 애물단지가 됐다.

애물단지가 된 100㏊ 광산지대를 어떻게 개발할지에 대해 고민에 빠진 주 정부는 독일 루르지방의 에펠탑이라고 불리는 쫄페어라인의 탄광 제반시설이 1930년대에 서양 현대 건축의 모태가 되는 바우하우스 양식으로 지어져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사실에 주목했다. 기능을 중시하고 단정한 형태의 새로운 건축 미학을 추종하는 바우하우스 양식은 당시에 대단히 진보적으로 평가됐다.

이에 주 정부는 에센 주민의 자존심인 산업시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재활용하는 방안을 찾았고 1989년 `용도 전환을 통한 보존`이라는 원칙에 따라 문화를 통한 변화에 눈을 돌렸다.

에센의 대표적인 탄광시설인 쫄페어라인의 공장은 디자인 박물관, 화랑, 디자인 학교, 야외수영장 등 편의시설 등으로 변모했으며, 탄광 설비 일부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해 채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주 정부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폐광은 세계적인 도심재생 명소로 변모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곳곳에서 매년 150만명 가량이 찾는 유럽 관광 필수코스가 됐다.

쫄페어라인은 흉물로 변한 공장시설을 파괴하고 새로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재활용을 통한 세계적인 문화시설로 변모해 지역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고, 특히, 지역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주고 있다.

 

▲ 뒤셀도르프 지하 터널미술관
▲ 뒤셀도르프 지하 터널미술관

△뒤셀도르프 지하 터널미술관

독일 뒤셀도르프 시내를 가로지르는 라인강변 지하에는 뒤셀도르프 시내 지하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각종 공사 자재를 보관하던 창고를 미술관으로 변화시킨 터널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라인강과는 불과 40여m 떨어져 있는 터널미술관은 길이 144m, 면적 888㎡으로 상당히 특이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상에 있는 카페로 들어간 뒤 긴 계단을 내려가 미술관에 들어서면 천장 높이와 공간 폭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지고 좁아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뒤셀도르프 시내 지하를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며 각종 공사 자재를 보관할 창고 용도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지하도로를 완공한 뒤 사실상 버려졌고, 1990년대 후반 뒤셀도르프 국제공항 화재를 계기로 실시한 공공물 소방점검 직후 안전문제로 폐쇄됐다.

그러나 폐쇄된 지하공간은 시간이 흐르며 인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생들이 몰래 예술을 창작하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이에 2006년 뒤셀도르프 시장은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을 높이 사 지하터널을 전시장으로 꾸미기로 하고 350만 유로라는 거금을 들여 전시공간으로 바꾼 뒤 2007년 문을 열었다.

터널미술관은 뒤셀도르프 미대생들에게 공식적인 첫 전시회를 열 기회를 제공하고,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아트, 설치 등 장르를 망라해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신진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인적 교류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신진미술가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는 이 미술관은 매년 5만명 가량의 젊은 예술가와 관광객이 몰리며 독일의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 도미니카넨 서점
▲ 도미니카넨 서점

△성당을 서점으로 활용한 도미니카넨 서점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시내에는 13세기에 지어진 성당을 개조해 매년 70만명의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독특한 서점이 있다.

밖에서 보면 고색창연한 성당 모습 그대로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이 나타난다. 바로 도미니카넨 서점이다.

건물을 떠받치는 10여개 기둥과 아치가 줄지어 있는 천장, 장엄한 느낌을 주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은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은 1294년 도미니코 수도회가 고딕 양식으로 세운 성당으로 1796년에 문을 닫은 뒤 마구간, 자전거 보관소, 전시장, 파티장 등 주민을 위한 공공장소로 이용했다.

그러던 중 2005년 네덜란드 최대 서점 체인이 이곳을 서점으로 바꾸겠다고 나섰고, 마스트리흐트 시 정부는 성당 내외부 모두를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서점으로 활용하는데 동의했다.

옛 성당 내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진행된 공사로 2006년 12월 14일 5만권의 장서를 갖춘 현대적인 서점으로 변모했으며, 영국 `가디언`이 2008년 이 서점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한 것을 비롯해 많은 언론매체가 앞다투어 소개하며 매년 70만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옛것을 보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은 행정당국의 노력으로 도미니카넨 서점을 찾는 사람은 책을 고르거나 커피를 마시며 17세기 초 프레스코화(1619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일대기를 묘사한 13세기 벽화(1337년) 등 지나온 역사와 만날 수 있게 됐다.

이제 우리도 도시가 지니고 있는 역사와 문화는 물론, 살고 있는 지역민의 애환을 반영한 도심 재창조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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