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위정 편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은하계가 줄지어지듯 사람들이 덕있는 사람쪽으로 몰려들기 마련이다”고 했다. 공자께서는 덕을 높이려면 “남을 대할 때 성실과 신의를 지키고 정의를 지향하면 도덕의식이 높아진다”라고 안연 편에 말씀하셨다.

정치의 요체는 오로지 바로잡는 일이기에 정(政)은 정(正)의 의미이며 바르게 되라고 채찍질하는 것이다. 정치와 도덕은 하나이며 곧은 도덕을 행하는 것이며 도덕의 참된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

공자의 정치는 덕치와 인정이다. 특히 형법의 정치를 반대하고 덕과 예의 정치를 주창하셨다. 또한 위정 편에서 “도덕으로 인도하고 예의로써 통솔한다면 수치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또 바르게 된다”라고 하셨다.

노나라 대부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 그대가 바르게 통솔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따르지 않으리오”라고 하셨다. 백성이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바로 서지는 못한다. 이 시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앞다투어 이야기한다.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이 시대가 건전히 바로 설 수 있을까. 이제 힘과 권력과 오만방자와 양심마저 저버린 그들에게 구할 것이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아직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다.

어제까지 남들의 비리와 그릇됨을 탓하고 질책하던 그가 오늘 아침 포토존에서 고개 숙이고 성실히 조사받겠다라고 하는 모습은 너무 자주보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정치에 대해 노자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노자는 무위의 정치를 논하였다. 소극적인 도덕으로써 도를 실현함과 동시에 말 없는 불언(不言), 가르침으로써 가르침의 주치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정치가 특별한 기교가 없으면 백성은 순박해지고 정치가 너무 자상하면 백성은 오히려 불만스러워진다 하셨다. 제도를 너무 많이 만들고 규제가 많을수록 백성들은 힘들어진다.

공자께서도 나의 인재됨을 알아주는 이를 찾아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위해 선택받기 위해 주유천하 하셨다. 불혹으로부터 지천명을 약간 넘기까지 정치적 활동을 하셨지만 그의 포부와 정치적 이상의 실현은 이룰 수 없었다. 크게 보면 나라의 정치이고 세상의 다스림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작은 가정만 하더라도 절약해서 몇 평수 늘려놓은 집에 찾아오는 사람 없다면 그 집은 집이 아닌 차디찬 가옥인 것이다. 어찌 그런 집에 신바람이 나고 좋은 기운이 있을 수 있을까. 내 사는 곳이 선하고 귀한 곳이면 사람들이 줄지어 기쁜 마음으로 모이고 흥해질 것이다. 세상의 걱정 다 짊어지고 살지 말고 내 처소나 돌아볼 일이다.

정치인들의 정신적 요체의 근본이 덕이 있고 베풀고 봉사와 정직이 그 본령이 되면 좋을 것 같다. 기대해 볼일이다. 우리 모두 “하나만 사랑하고 버리십시오. 그것은 생이 아니라 약속”이라는 것 가슴에 평생 안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디 덕성스럽고 탁월하고 성숙하게 정치하는, 우리 모두가 앞다투어 어른으로 뫼실, 그런 분 많았으면 참 좋겠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