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최근 몇 가지 이슈들로 문단이 시끄러웠다. 일단락된 것도 있고 현재진행형인 것도 있다. 각각의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와 첨예한 논쟁은 매우 의미 있고 생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좀 피곤하다. 문학 행사장이나 경조사 자리, 술자리에 모인 문인들이 다 똑같은 이야기만 해서다. 모두 입을 모아 문학판의 가십들을 열 올려 떠들었다. 사건의 당사자가 허락한 적 없는 대변과 전언, 풍문에 대한 추측과 확대 해석, 왜곡과 곡해, 특정인의 됨됨이와 과거 행적에 대한 고발성 증언들이 오가는 사이 가만히 자리를 떴다.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자기가 속한 판의 동정에 촉을 세우고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건 본능이다. 원시인들도 누가 더 큰 매머드를 사냥했는지, 어떤 소년이 족장의 딸과 혼인하게 될지 따위를 두고 종일 수다했으리라. 말의 홍수, 정보와 소문의 범람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오죽할까. 직장인들은 회사 돌아가는 상황이나 인사 결과 같은 주제를 두고 하루 종일 심각하게 대화한다. 군인들에겐 며칠 앞으로 다가온 유격훈련이나 정기휴가가 핫이슈다. 온통 그 이야기뿐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가 곧 자기 정체성을 이룬 사람들이다. 성실하고 정직한 이들이다. 직장인이 직장 이야기하고, 군인이 군대 이야기하지 무슨 다른 대화를 하겠는가.

문인들의 술자리가 시시해서 일찍 일어난 것은 내가 불성실한 시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들처럼 문학에 내 전부를 걸지 않은 까닭이다. 내 관심사는 항상 다른 곳을 향해 있다. 누군가의 문학상 수상, 등단, 시집 발간, 표절 논쟁, 모 작가의 사생활 이야기 같은 건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다.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 글 이외의 것들을 이야기할 때, 문학 바깥, 문단 너머의 것을 이야기할 때 그제야 술맛이 난다. 음악, 여행, 스포츠, 영화, 연애, 애완동물, 건축, 쇼핑, 요리 같은 것들이 주제가 되면 침묵을 깨고 대화에 참여한다. 아는 게 별로 없어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두 마디 질문만 해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어차피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사람들이다.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나치면 재미없다. 문학이라는 동일성 속에 다채롭게 빛나는 개인의 취향과 생활이 나는 훨씬 궁금하다.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카페에 모여앉아 몇 시간 내내 신앙 간증만 나눈다면 그건 예배의 연장이다. 나는 문인들이 문단 이야기를 하는 게 꼭 회식 자리에서 업무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진다. 모든 소식과 풍문을 귀신같이 꿰뚫고 있는 사람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나는 취미로 낚시와 야구를 즐긴다. 내가 좋아하고 가깝게 어울리는 낚시인들은 대개 낚시 바깥과 너머의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만나면 물론 낚시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지만, 이내 다른 주제로 옮겨간다. 낚시 이야기를 하더라도 장비나 기술, 포인트에 대한 밀도 있는 대화보다 강물 냄새, 새 소리, 바람의 촉감, 별빛, 낚시터에서 마시는 소주 한잔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그 헐거운 수다를 나는 사랑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야구팀 단체 채팅창에서는 야구 이야기보다 쓸데없는 헛소리들과 온갖 개그, 여행 후기와 음식 리뷰 같은 게 대화의 주를 이룬다. 그러다 경기장에서 만나면 오직 야구에 집중, 최선을 다해 플레이한다. 나는 그게 멋지다고 생각한다.

정치 이야기만 하는 사람, 먹고사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 남 험담과 뒷담화만 하는 사람,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 하나님 부처님 이야기만 하는 사람, 음담패설만 하는 사람치고 주변을 유쾌하게 하는 이는 본 적 없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인데, 세계관이 한 군데에 고착돼 있다는 증거다. 나는 인식과 사유가 고여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 보다 넓고 다양한 세계를 향해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과 술 마시고 싶다. 자기가 속한 울타리 안도 사랑하지만, 바깥과 너머를 또 사랑할 줄 아는 사람과 여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