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숨이 턱턱 막힌다. 땀이 속옷을 적시고 목덜미를 흥건케 한다. 온몸이 축축하고 끈적거린다. 땀과 섞인 선크림이 눈으로 흘러들어 따갑다. 눈에 고인 물기를 빨아먹으려는 날벌레들이 거슬린다. 밤공기는 뜨겁고 새벽은 미지근하다. 사포로 문지르는 듯한 땡볕이 살 껍질을 벗겨낸다. 정수리에 전동드릴이 박히는 느낌, 현기증이 일어난다.

지독한 폭염이다. 처서(處暑)도 지나 가을이 가까운데 이제 와서 더위 이야기를 꺼내는 게 `뒷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더위는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 기상청을 믿을 수가 없다. 10월에도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만 같다.

만사가 귀찮고 욕구가 단순해진다. 더위를 피해 서늘한 곳에 있고 싶다. 찬물에 몸을 씻고 싶다. 물을 많이 마시니 방뇨와 배변이 활발하다. 쾌적한 데서 먹고 눕고 놀고 싶다. 천국이라 한들 에어컨 없다면 가지 않겠다. 미녀와의 데이트도 야외라면 거절이다. 스킨십도 싫다.

1994년에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 해 살인적인 더위를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야생 족제비 수준으로 뛰어놀고, 웬만한 산꼭대기는 한달음에 오를 만큼 체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더위를 제대로 먹은 건 2008년 여름, 가장 덥다는 경북 영천에서 장교 임관 훈련을 받을 때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죽겠는데, 땡볕은 통과시키고 바람은 차단하는 군복을 입고 철모와 소총, 수통 등 쇳덩이들을 매단 채 기어 다니느라 살이 15kg이나 빠졌다. 코피가 터지기도 했다. 몸 곳곳에 땀띠가 나 베이비파우더를 덕지덕지 바르면 거대한 찹쌀떡이 된 기분이었다.

2012년 여름, 에어컨 없는 반지하 원룸에서 더위를 견뎠다. 선풍기만큼 쓸모없는 도구가 또 있을까 싶었다. 아예 알몸으로 살았다. 수건으로 감싼 아이스팩을 온몸에 올려두고 가만히 누워 정육처럼 지냈다. 누워 있다가 더우면 바로 화장실로 가 찬물로 씻었다. 하루에 샤워를 열 번쯤 한 것 같다. 그래도 끝내 가을이 오고, 첫눈이 내렸다.

이듬해 여름날이었다. 친구와 그로부터 소개 받은, 호감 가던 여성이 내가 사는 방에 술을 사들고 놀러 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이 “불지옥!” 외쳤다. 지옥불에 사는 나는 염라대왕인가 성서에 나오는 다니엘과 세 친구인가. 술판을 펴지도 못한 채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곳을 찾아 헤매다 밤중 산속에 들어가 모기에게 헌혈하며 술을 마셨다. 그 치욕이 분해 며칠 뒤 큰맘 먹고 에어컨을 장만했다. 세상은 에어컨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에어컨 아래서 시도 쓰고 논문도 썼다. 밥도 지어먹고 정말 사람답게 살았다.

에어컨 없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다. 덕분에 잠도 자고 글도 쓰고 밥도 먹는다. 그런데 이 최소한의 인간적 삶도 누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아, 달콤했느냐. 네가 누린 것의 수십 배를 거두어가겠다.` 누진세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누진세로 수십만 원을 내고 나면 당장 곤궁해진다. 누진세 무서워 에어컨을 켜지 못하면 책상에 앉아 글도 쓸 수 없고, 침대에 누워 잠도 못 잔다. 글 못 쓰면 밥 못 먹고, 잠 못 자면 체력 떨어져 육체노동도 못 한다. 누진세는 단순한 전기 요금이 아니라 삶의 기본권을 담보로 한 가혹한 고리대금이다.

어떤 분들은 에어컨 빵빵한 식탁 위에서 송로버섯과 캐비어, 샥스핀, 능성어, 한우갈비를 먹는데, 나 같은 사람은 불가마 같은 방구석에서 뜨거운 라면이나 후후 불어먹는다. 지난해 한전 영업이익은 11조3천400억원, 올해 상반기에만 누진제를 앞세워 6조원을 넘어섰다. 그 돈은 다 정부의 재정수입이 된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마피아들이 유독 많이 들러붙어 있다. 호화스러운 오찬상이 어떻게 차려졌는지 알만 하다. 폭염에 가축들은 죽어나가는데 누진세 무서워 에어컨은 엄두도 못 내는 게 축산 농가의 현실이다. 에어컨 틀지 말고 살라는 건 국민을 축사의 개돼지나 마찬가지로 여긴다는 얘기다. 열 받는다.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