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절부터 기상관측은 정치의 요체였다. 천문대를 항상 궁궐에 두고, 관측의 결과는 오직 임금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농업경제 시절에는 일기예보가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였다. 왕이 “향후 며칠간 비가 올 것이니 농민들은 대비할지어다”라고 어명을 내리고 그 천기예보가 맞아들어가면 백성들은 “우리 임금님은 과연 하늘이 내신 천자로다” 라며 숭앙하고 충성했지만 틀릴 때는 임금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광해군이나 연산군이 쫓겨난 것도 그 천기(天幾)를 잘 맞추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인데 천문대 관리들이 게으름을 피웠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생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천문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관상감 관리에게 벌을 주소서”라는 건의문이 수 없이 보인다. “일식을 맞춘 자에게는 작은 말 한 필을 상으로 주고 월식을 맞추면 비단옷감을 주고 기상을 바로 맞추지 못한 관리는 근무평정에서 점수를 깎아라”는 성종의 어명도 실록에 있다. 점수가 많이 깎인 관리는 승진이 어렵다. 기상에 이변이 생기면 “왕이 부덕한 소치”라며 소찬을 하고 베옷을 입고 하늘에 사죄했는데 연산군은 그 짓이 싫어서 “하늘의 변화와 왕 노릇이 무슨 상관이냐”했고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해서 관상감은 크게 축소하고 `천문일기`만 적도록 했다.

올해 여름은 `기상청 수난의 계절`이었다. 비가 온다 하면 안 오고 안 온다 하면 오는 일이 빈번하니 `청개구리 기상청`이라 했고 “8월 16일부터 더위가 간다”란 예보가 자꾸 어긋나서 18일, 20일, 22일, 24일로 2일단위로 미뤄지는 통에 `양치기 소년 예보`라 했다.

조선시대 같았으면 `관상감 무용론`이 빗발쳤을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국회가 아무 소리 하지 않는다. 기상은 이미 `정치행위`가 아닌 모양이다.

관측기계·수치예보 모델·예보관의 능력, 이것이 기상관측의 3요소인데 지금 거론되는 문제점은 `예보관의 능력`이다. 중앙감사기관을 투입, 고장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 급하다.

/서동훈(칼럼니스트)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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