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1주년 잊혀진 미주 이민 1세대를 찾아서
⑸ 중가주 독립운동 사적지의 재조명

▲ 미주 초기 한인 이민 1세대 146위가 안장된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 리들리시의 공공묘지에서 지난 13일 광복 71주년 기념식 및 애국선열 참배 25주년 추모식이 열려 고혼들을 위로하는 노래와 춤이 공연되고 있다.

재미 한인 교포 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852년부터 1905년까지 32개 민족의 하와이 외국 이민자들 가운데 한인들의 귀국과 본토 이주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는 조국이 일본에 의해 침략되고 있는 불안한 정세 속에서 가족들을 염려하거나 외세의 피압박에 절망한 나머지 이민의 길을 선택한 결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이후 본지의 기획특집이 보도되는 동안 공교롭게도 한국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나라 안팎에서 극심한 갈등에 휩싸여 있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가 을사늑약(1905년) 즈음의 동북아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경고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망국의 시름에 백성이 타국으로 방랑길에 오른, 뼈 아픈 과거를 가지고도 과연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고 있는가. 미 중가주 한인 1세대의 잊혀진 역사를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일은 시시각각 시련과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자각하고 자강하게 하는데 한 계기가 될 것이다.

`김형제상회` 김호 후원으로 빛 본
1959년 발간 `재미한인 50년사`
해외독립운동史서 큰 의미 차지

세번째로 많았던 경북출신 이민자
독립 지원에 상당한 역할 담당
미주 이민1세대 조명 당위성 충분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위상도 커져
국내외 독립운동사 연구확대 기대

□ 중가주 초기 한인사의 의의

지난 2003년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정부와 민간에서 모두 기념 저작과 발표가 봇물을 이룬 해였다. 당시 관련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됐다고 평가되는 단행본 `재미한인 50년사`의 발간 경위는 미국 중가주가 한국의 해외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재미 사학자 김원용(1976년 79세로 타계)이 514쪽 분량에 직접 손으로 써서 지난 1959년 미국 리들리시에서 발간한 이 역작의 후원자는 김호였다. 그는 미국의 천도복숭아 `넥타린`을 개발해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가가 된 김형순과 함께 `김형제상회`를 운영하며 조국을 지원한 정부 포상 독립유공자이다. 미주 이민 1세대인 이들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인종차별에 시달려가며 미국 본토에서 자수성가했다. 이후 미 주류 사회에 진출하는 한편 정치활동에 참여해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한인사회를 형성하는 중심이 됐으며 지식인을 후원해 자신들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남겼다.

본지는 이번 기획 취재로 지난 1903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농업 이민자 가운데 미 본토 이주를 택한 한인들이 북가주인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리들리와 다뉴바 일대 중가주로 유입된 이후 미주 최초의 한인타운이 형성되는 경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21년 김형제상회가 설립된 이후 1960년대까지 이 일대 농장에는 일평균 최대 500여명의 한인이 고용됐다. 1920년에 국내외 최초의 3.1운동기념식이 인접한 다뉴바에서 열린 배경에는 이런 연유가 있었다. 각성된 이곳 한인사회는 최초의 여성애국단을 결성하고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왜간장 안먹기, 일제상품 배척운동을 폈다. 한인교회는 여름마다 국어학교를 열어 2세 민족교육을 했다.

하지만 본국의 외면과 한인사회의 해체 속에서 은퇴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리들리와 다뉴바 한인묘지의 자료를 교민들이 분석한 결과 독신자는 3분의 2가 넘었다. 안창호나 이승만 같은 해외독립운동 명망가의 손에 매월 수입의 10%가량을 독립자금으로 맡겼지만 자신은 말년에 `여관`이라 불리운 합숙소에서 무연고자로 비참한 생을 마감했다. `리들리의 마지막 한국인` 로버트 김에 따르면 이들의 유품을 챙기는 과정에서 침대나 카펫 아래서 꼬깃꼬깃하게 접은 지폐가 나와 주위를 더 슬프게 했다고 전한다.

 

▲ 재미 한인 교포들이 고국의 민족화합통일연대가 처음으로 기증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재미 한인 교포들이 고국의 민족화합통일연대가 처음으로 기증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경북도 정체성 확장 계기도

경북도가 펴낸 경북독립운동사와 재미 사학자 등의 연구성과를 종합하면 지난 1903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로 공식 이민을 떠난 7천500여명 가운데 경북 출신은 세번째로 많았으며 그중 경주가 으뜸이었다. 공식적으로 경북 출신의 미주 이민자 중 독립유공자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무명의 한인 이주 노동자들이 비루한 삶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대열에 나서는데 경북 출신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동안 `항일`(抗日)과 `농도`(農道)를 정체성의 중심으로 삼아온 경상북도가 미주 한인 이민1세대를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일은 당위성이 충분하다.

특히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위상이 확대된 상황에서 국내외 독립운동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희곤 관장이 경북 전역으로 사업 확장을 준비하고 있어 상당한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본지에 이번 해외취재보도를 제안한 LA 거주 재미 신학자 최덕희 씨는 “미 중가주 한인 이민선조들의 역사가 재조명되고 재미 교포들이 이를 추모하는 행사에 쓸 태극기가 고국에서 기증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면서 “나라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자각을 주고 다음 세대에는 또 다른 길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오전 11시(현지 시각) 미국 리들리시 공공묘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 및 애국선열 추모식에는 25년째 행사를 주관해온 김명수 재미 중가주해병전우회장과 이자경 미주 한인이민역사연구가 등 교민들이 참석해 이민선조들을 위로했다. 이날 행사에 사용된 태극기는 본지 보도를 계기로 민족화합통일연대 박영근 공동대표 등 회원들의 기증으로 전달된 것이어서 그 의미를 더했다.

▲ 김희곤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관장
▲ 김희곤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관장
인터뷰 - 김희곤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 관장

정부 포상 독립유공자수 `전국 최다`
대구·경북은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

-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경북의 위상은.

△정부 포상 독립유공자 수가 2천101명으로 전국 최다이다. 그 다음인 경남, 전남 등의 1천명대와 비교하면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안동이 356명으로 가장 많다. 1905년부터 1910년말까지 전국의 순절자 70여명 중 가장 많은 18명이 경북에서 나왔다. 대구경북은 한국 독립운동의 중심이다.

- 경북출신의 대표적 미주 독립유공자는.

△2012년까지 미주지역 독립유공자 중 경북은 모두 9명으로 주로 반 이승만 계열에 섰다. 영양 출신 권도인은 하와이에서 이승만 중심의 동지회, 안창호 중심의 대한인국민회 간의 갈등이 깊어지자 `합동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기업가로서 한국의 `발`을 응용한 차양을 개발해 조국독립에 많은 기부도 했다. 대구 출신 송종익은 안창호와 함께 흥사단의 주역이었다. 경주 출신 김성권은 하와이와 북미의 한인단체를 통합한 국민회 경축식(1909년 2월1일)에 하와이 총대표원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 학자로서 해외독립운동사 연구에 업적이 많은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편찬위원장을 역임하며 해외독립운동 유적지 조사를 주도했다. 이 사업은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는데 미주팀 등 7개팀이 구성돼 전세계 대상지 700여곳을 조사했다. 미국 리들리도 포함돼 조사단이 현지를 2번 방문했다.

-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의 운영 계획은.

△경북도청 이전과 맞물린 김관용 도지사의 공약사업으로 지난 2014년 1월 명칭이 바뀌었다. 업무영역이 기존의 안동에서 23개 시군 전체로 확대됐지만 8명의 정 직원으로 예산, 규모 등 여러 면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과도기이다. 오는 연말 신축 기념관이 완공되면 건물이 2.5배 확장된다. 이 곳은 대구경북 전체의 독립운동사를 포함하며 지금 안동의 독립운동가 1천명을 기념한 추모벽도 경북 전역을 망라할 것이다. 기존 건물에는 어린이박물관과 안동의 독립운동 대표마을을 기념할 것이다. 연수원도 2배 확장해 120명의 숙식이 가능해진다. 신흥무관학교를 재현하기 위해 서바이벌게임 체험장도 운영할 계획이다. 조상들의 자료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한 상담도 강화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끝>글·사진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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