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할 때면 글제를 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품의 수준보다 선구(選句)된 내용이 작가의 지견이요, 견처이며 그의 삶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글씨는 말과 사상과 삶의 철학을 대신해 나타난 형상일 뿐이다.

도록이 오면 글씨는 물론 글제를 찬찬히 세밀히 치밀하게 살펴보고 작업노트에 옮겨 적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귀하고 고마운 일이다. 특히 좋은 글귀는 반복해서 쓰기도 한다. 즉 출품했던 개인전 글제를 다시 다른 방법(장법:구도)으로 작품을 한다. 시간과 공간, 생각의 능력 차이겠지만 성숙하고 다른 작품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 중에 귀하게 여기는 글제 중 하나가 “만약 옥의 티는 갈아내면 사라지는데 잘못된 말 한마디는 돌이킬 수 없다”는 글이다. 벌써 몇 번째 썼고 이번에 다시 작품으로 재생산할 것이다. 이 글제는 공자의 사위인 남용이 하루 아침에 꼭 세 번 읽고 새겼다는 말을 듣고 딸을 맡겼다는 이야기는 말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한다.

공자는 이인(里仁)편에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이유는 몸소 실천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해서이다(言之不出恥躬之不所也)”라고 했다. 얼마전 어떤 분이 좌우명을 부탁해 왔는데 “君子恥其言而過其行(사람의 말이 행동보다 과장될 때 부끄럽다)”라는 내용이었다. 쓰고 한동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실수를 하면 모든 사람이 알지만 거짓말을 하면 아무도 모른다.”

말 중에 거짓말이 어느 정도일까. 거짓말도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의의 거짓말은 통용가능한 말인가? 어느 정도의 결점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말도 행동도 실수를 하기 쉽다. 알아차리고 금새 평정심을 찾도록 끊임없이 갈고 닦고 수행을 하는 삶은 향기가 있고 아름답다. 말은 침묵을 통해 깊어지고 야물어지고 결실을 맺는다. 말은 존재의 질서이다. 쓸데없이 하고 나면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며 말에도 가치와 순도가 있다. 가려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말은 반드시 실천행이 있게 된다. 세상 살면서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산다는 말은 또 말을 낳고 재앙을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성인들 말씀에 “입을 무겁게 하라”고 숱하게 가르친다. 아낄수록 무거워지며 남에게 진실해 보이는 법이며 남에게 행복과 위안 용기를 주는 귀한 일들을 하도록 노력해 볼 일이다. 사람의 입안에 도끼가 들어있다. 사람과 사람사이 헛말과 간사한 말 나쁜 말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위대한 일이다.

자신을 파멸로 이르는 것이 있다면 그 첫 번째가 거짓말이다. 목숨이 다하도록 거짓말하지 말라는 선인들의 당부의 말씀이 늘 생생하다. 몇 년전 작업실 방문에 내건 함구당(緘口堂)이라는 현판이 나를 다시 돌이켜 세운다. 세상 살면서 입닫고 살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말조심이다. 조심 조심 살얼음 밟듯하고 남에게 아픈 말보다 따스하고 가슴이 훈훈해지는 말로 우리 모두가 어려움을 잘 이기길 바랄 뿐이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