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유림 사드 반대 `만인소`
내일 청와대 앞서 상소 낭독
대국민 호소·결의 전달키로

心山 김창숙 선생의 얼이 깃든 성주는, 국난 때마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으며…
팔십여세 노구로 천리길 마다않고 왔으니 비통함에 젖은 군민의 힘이 되어 주소서

국가 현안마다 등장 `만인소`
조선시대, 서원훼철 반대 등
7차례 중 3차례 안동서 올려
2010 안동·2015년 경주서도
시민염원 담아 통치권에 전달

“성주의 유림은 나라가 위태롭고 민족이 힘들 때 늘 역사의 중심에서 분연히 일어나 목숨 걸고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서 왔습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하시어 비통함에 젖어있는 성주군민에게 힘이 되어주소서…”

경북 성주 유림들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성주 설치를 반대하는 이같은 상소문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올리기로 하면서 만인소(萬人疏)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만인소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대적인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만명의 뜻을 모아 임금에게 올린 상소다. 특히 성주는 독립운동가이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879~1962)선생의 태생지여서 성주 유림들의 이번 상소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떤 답을 내릴지 주목된다.

성주지역 유림 120여명은 27일 오전 11시 청와대가 있는 효자동주민센터에서 대통령에게 드리는 상소문을 낭독하고 대국민 호소문과 반대 결의서를 청와대에 전달할 계획이다.

성주 유림단체연합회는 25일 공개한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이란 상소문에서 “성주 유림은 국난으로 어려울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으며 유림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의 얼이 깃든 곳”이라고 소개하면서, “사드배치 결정과정에서 배제되고 무시당한 모멸감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참을 길 없어 팔십여세의 노구를 이끌고 대통령을 뵙고자 천리길 마다않고 이 억울함을 말씀 드리고자 상경했다”면서 배경을 설명했다.

유림단체가 밝혔듯이 성주는 심산 선생의 태생지다. 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 5적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렸다. 1919년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에 천도교·기독교·불교 대표만 들어있고 유림 대표가 없자, 유림 130여명을 모아 파리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편지를 쓰고 대표를 보내는 1차 유림단 사건을 주도했다. 1924년 만주와 몽골 접경 지역에 새로운 독립기지와 군사학교를 지으려고 자금을 모으다가 붙잡혀 1927년 투옥됐다. 1934년 출옥했으나 다시 갇혀 해방을 감옥에서 맞았다. 그의 세 아들 가운데 둘은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선생의 투쟁은 계속됐다. 신탁통치와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 투쟁을 벌였고, 1952년 봄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야경고문`을 발표한 뒤 `반독재호헌구국선언`을 하려다 부산형무소에 갇히기도 했다. 1946년 9월 성균관대를 설립해 초대 총장이 됐지만 반독재 투쟁을 벌인 일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 그는 여든이 넘어서도 국가보안법 개악 반대 투쟁을 벌이고, 효창공원의 김구 선생 무덤을 먼 곳으로 옮기려는 이승만 대통령의 시도를 온 몸으로 막아냈다. 1962년 83살로 숨질 때 그에겐 집 한 칸이 없었다. 성주청년유도회는 지난해 9월 24일 성주문화예술회관에서 심산 선생 숭모작헌례를 공개 시연하기도 했다.

성주 유림들의 상소문 전달을 계기로 경북지역에서도 주요 현안마다 등장했던 만인소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015년 9월 7일, `월성 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주민과 경주지역 시민·환경단체 회원들은 `월성1호기 폐쇄 주민투표 요구 경주시민 만인소`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10년 10월 25일 안동지역 기관·단체장과 유림 대표들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안동시민의 염원을 담은 만인소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시민 1만83명의 서명으로 만들어진 만인소는 △국가 차원의 한자교육 실시 △안동 자율형 사립고 설립 △경북 신도청 소재지(안동) 평생학습센터 건립 등의 건의사항이 담겼고, 폭 1.1m에 100m 길이로 작성됐다. 1884년 안동 선비들이 고종에게 개화에 반대하는 `복제 개혁 반대 만인소`를 전달한 뒤 국가 통치권자에게 만인소가 전달되기는 126년만이었다.

만인소는 개인의 뜻을 담은 상소가 아닌 `만 사람의 뜻은 곧 천하 사람 모두의 뜻`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조선시대 만인소는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달라는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1855년, 1만94명 서명)를 비롯해 `서원 훼철 반대 만인소`(1871년, 1만27명 서명) 등 모두 7차례 있었으며, 그 가운데 3차례는 안동 선비들이 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성주 유림들의 사드 반대 상소문이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창형·성주/전병휴기자

    이창형·성주/전병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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