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도서관 선진화 방안

▲ 프랑스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전경.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인류가 역사와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지식과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책 이외의 어떤 것들에서 세상을 배울 수 있을까? 책이 인간이 만든 최고의 `보물`이라면, 도서관은 `보물창고`다. 본지는 프랑스 파리와 서울시 관악구의 선진적인 도서관문화를 소개함으로써 향후 포항지역 도서관이 그려갈 청사진에 미력한 도움이나마 주고자 한다.

-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문화도시 파리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2. 파리 시민들의 사랑방 퐁피두도서관
3. 서울 관악구가 양질의 인프라를 갖춘 이유
4. 지역 도서관의 현재와 지향하는 미래
5. 파리와 서울 관악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1368년 세워진 세계 첫 민간도서관
펼쳐진 네권의 책모양 형상화한 건물

쇠·나무·유리·흙의 조화, 동선도 편안
1692년 개방… 서적 3천500만권 보유

장 폴 사르트르와 앙드레 지드, 폴 엘뤼아르와 알베르 카뮈의 나라.

대통령이 소설가인 문화부장관(앙드레 말로)을 예술가로서 존경하고, 아름다운 여배우가 급진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의 대변인을 맡는 나라. 다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독일과 더불어 유럽 현대철학의 생성과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나라.

재론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는 지구 위에서 손꼽히는 `문화강국`이다. 지난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의 가혹한 식민통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국주의`라는 정치적 행태에 대한 비난이다. 그 나라가 이룬 문화적 성취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는 게 아닐까.

▲ 프랑스 국립도서관 전경.
▲ 프랑스 국립도서관 전경.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사회의 중심에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que Nationale de France)이 있다. 펼쳐진 네 권의 책 모양을 형상화한 거대한 금빛 건물이 보는 이를 부드럽게 압도한다. 파리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1368년 세워진 세계 최초의 민간도서관이다. 그 역사가 자그마치 648년에 이른다.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1692년.

▲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입구.
▲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입구.
여기엔 병인양요 때 한국에서 반출된 `외규장각 도서`도 보관돼 있었다. 그것들이 `대여`라는 형식으로 사실상 반환된 것은 2011년이다.

현대에 들어서며 프랑스는 `접근성`을 문화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자”는 매력적인 구호는 파리 시민들을 도서관으로 이끌었다.

▲ 프랑스 국립도서관 앞 나무의자에선 삼삼오오 모여 간단한 음식을 먹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프랑스 국립도서관 앞 나무의자에선 삼삼오오 모여 간단한 음식을 먹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을 누구보다 아낀 유럽 정계의 거물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 대통령은 1988년 “국립도서관을 세계 최대 규모로 리모델링 하겠다”고 발표한다.

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닌, 문화와 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

 미테랑이 마음속에 그린 그림을 현실로 옮겨 지금의 국립도서관 모습으로 축조한 사람은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이런 이유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으로도 불린다.

파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접 찾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쇠와 나무, 유리와 흙이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서고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동선은 자연스러웠고, 열람실 창밖으론 푸른 나무가 열을 맞춰 서 있어 눈이 편안했다.

▲ 프랑스 국립도서관 위로 보이는 하늘. “책을 읽는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라는 상징처럼 보였다.
▲ 프랑스 국립도서관 위로 보이는 하늘. “책을 읽는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라는 상징처럼 보였다.
보유한 책은 3천500만 권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분량. 도서관 바깥엔 휴식공간도 잘 조성돼 있어, 도시락을 먹거나 음료수를 나눠 마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건 도서관의 외형이나 하드웨어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의 거침없는 비판의식과 딱 부러지는 의견개진은 더 놀라웠다.

바칼로레아(Baccalaureate·프랑스의 대학입시 자격시험)를 준비하고 있다는 17세 마리안느와 18세 알렉산드라. 평소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 않고서는 논술형으로 진행되는 바칼로레아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다.

 

▲ 국립도서관 바깥 휴게공간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프랑스 청년.
▲ 국립도서관 바깥 휴게공간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프랑스 청년.

시험에선 이런 유형의 문제가 출제된다고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일체의 의미를 박탈해가는 것인가?”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예술은 현실에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40대 중반인 기자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어려운 논제들이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자란 탓일까. 비록 10대지만 둘의 독서량이 적지 않다는 것을 주고받은 몇 마디 말로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프랑스 도서관은 규모보다는 그 안에 채워질 콘텐츠에 관해 더 고민해야 돼요”라는 마리안느의 똑 부러지는 어법과 “사회에선 모두가 공평하게 돈을 나눠가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곤궁한 학생들에겐 1년에 30유로(약 3만9천원)인 전문도서 열람료를 면제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라는 알렉산드라의 주장에는 논리적 빈틈이 없었고, 철 덜 든 소녀의 칭얼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독서의 힘` 외에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 푸른 나무가 열람실의 중심을 메우고 있어 자연친화적으로 보인다.
▲ 푸른 나무가 열람실의 중심을 메우고 있어 자연친화적으로 보인다.

저무는 붉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선명하게 빛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 출구에서 스위스와 프랑스를 오가며 일한다는 해운회사 직원 클로드(49)와 그의 친구 마커스(52)를 만났다.

휴가 중이라는 둘에게 “편히 쉬거나 여행을 가지 왜 도서관에 온 것인가”라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곳이라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하다.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단 새로 나온 소설을 찾아보는 게 휴가를 즐기는 보다 좋은 방법 아닌가?”라는 반문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나이와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프랑스 사람들은 오늘도 도서관을 향한다. 불어 닥친 경제적 불황에 휘청거리고 있지만, 유럽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배후에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책`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글/홍성식 기자·사진/이준성 기자

    홍성식 기자·사진 이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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