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사건 전모
피해자단체 “살아있다”
검찰 `사망` 결론 반발

무려 5조 원이 넘는 유사수신 금융다단계로 사기행각을 벌인 조희팔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막노동, 도박판 등지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잇는 그저그런 사람에 불과했다.

조희팔은 40대 중반에 형이 일하는 한 다단계 업체에서 일을 배운 뒤 지난 2004년 10월 (주)BMC(Big Mountain Company)를 설립하고, 고수익 대신 구체적으로 연 35% 확정금리를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과 매달 투자자 통장에 입금해주는 행각을 통해 수많은 투자자를 불러 모았다.

수익금은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건강보조기구 구매한 뒤 회사측이 전국의 찜질방 등에 빌려주는 방식의 사업이라며 설명회를 통해 알리면서 투자자들에게 합법적인 사업임을 강조하고 황금알을 낳은 산업이라는 가면 속에서 승승장구 했다.

당시 국내 경제상황이 저금리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조희팔의 이같은 사업은 빠른시간 내 전국으로 유명세를 탔고, 서울과 부산 등 전국 20여곳으로 사업을 확장시키며 정관계 인사들과 인맥을 쌓는데도 노력했다.

하지만, 뒷사람이 낸 돈을 앞사람에게 이자로 주는 이른바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올리는`방식의 사업을 4년간 지속하면서 한계에 봉착했고, 이들은 7만여명으로부터 받은 5조원이 넘는 투자금 중 2천900억원을 챙겨 달아날 준비를 했다.

사기 행각을 벌인지 2년이 지난 2006년부터 내사를 시작한 경찰은 지난 2008년 10월 조희팔과 핵심 측근을 사기 혐의로 수배했고, 두 달 뒤인 지난 2008년 12월 조씨는 수사망을 뚫고 중국으로 밀항했다.

이때 조씨는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에서 양식업자 박모(42)씨의 배를 타고 격렬비열도를 거쳐 서해 공해상으로 나가 미리 대기하던 배에 옮겨 타고 유유히 중국으로 달아났다.

당시 경찰의 사기 혐의 내사 과정과 수배 후 중국 밀항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조씨 등에게 돈을 받아 처벌된 검찰·경찰 관계자만 8명에 달하는 사실에서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정확한 상황은 검찰의 조희팔 사망에 따른 공소권 없음으로 묻히게 됐다.

중국으로 달아났던 조희팔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공장과 식당 등을 운영하면서 한국에서 온 거부 행사를 했고 이따금 찾아온 한국 경찰관과 골프를 치고 술을 마시기도 하는 등 수배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2012년 5월 경찰은 “조희팔이 지난 2011년 12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며 장례식 동영상을 공개했지만, 유족이 찍었다는 동영상과 중국 당국이 발행했다는 사망진단서가 의심스럽다는 주장과 함께 위장 사망설이 급속하게 번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5년 10월 최측근으로 지목된 강태용이 중국 공안에 체포 돼 두 달만에 국내로 압송됐다.

강태용은 조희팔이 운영한 유사수신업체 부회장을 맡아 동생, 처남 등을 거느리며 재무, 전산 업무 등을 총괄했다.

그동안 사건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은닉자금 환수, 비호세력 규명 등에 주력해 검·경 관계자 8명을 포함해서 모두 70여명을 처벌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사기사건 이후 온갖 소문이 나돌았던 정경유착 등에 대해서는 더이상의 진전이 없고 검찰이 찾아낸 조희팔의 은닉 자금 중 현금, 부동산 등 950억원 가량을 2만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이 나눠 가지는 것으로 12년간 계속됐던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들로 구성된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대표 김상전)`는 조씨가 여전히 중국에 살아있는 것으로 확신하면서 “검찰 수사는 엉터리로 법정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반발하며 조희팔을 직접 잡겠다고 나섰다.

/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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