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디어 마이 프렌즈`서 `72세 4차원 독거 소녀` 조희자 역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드라마입니다.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드라마를 드디어 한 것 같은 느낌이라 정말 행복해요.”

비단 일흔다섯 노배우의 생각만은 아닐 듯하다.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같은 느낌일 것이다.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72세 4차원 독거 소녀` 조희자를 연기하고 있는 김혜자를 25일 인터뷰했다.

노인과 `꼰대`를 내세운 케이블 드라마가 시청률 5%를 넘기며 청춘들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 `사건`이다. 연기하는 배우는 행복하고, 보는 시청자는 감동을 받는다.

지난 수십년 `한국의 어머니상`을 대표해온 김혜자는 이 드라마에서도 자애로운 엄마다. 깔끔하고 경우가 바른, 유복하고 예쁜 우리들의 엄마다.

하지만 이 엄마는 수줍음도 많고 엉뚱한 면도 많은 발랄한 소녀이기도 하고, 머리 속에서는 망각이라는 병이 퍼져 나가는 치매 할머니이기도 하다. 그런 조희자의 모습은 나비처럼 살랑살랑 날아오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벌처럼 가슴을 꾹 찌른다. 늘 소곤소곤, 조용하지만 조희자의 생각과 처신과 상황은 울림이 큰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빛깔은 슬프다.

다음은 일문일답.

- 최근 희자의 치매가 심해지는 모습이 조명됐다. 연기하는 심정이 어떠했나.

△ 글쎄, 그냥 내가 그 여자(희자) 같은 기분이 되는 것 같다. 그 여자는 쓸쓸하다. 치매는 뇌가 줄어드는 거라고 하던데 머릿속이 어찌 될까 옛날부터 궁금했다.

그 여자는 조용하게 치매가 진행되는데 이거 하면서도 궁금하다. 머릿속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예전에 봉사활동 하러 파키스탄 지진 난 데 가면 큰 빌딩은 폭삭 무너졌는데 그옆에 작은 집은 안 무너졌다. 큰 빌딩은 지반도 다지고 튼튼하게 지었을 텐데 무너지고 그 옆에 허술하게 지은 집은 멀쩡하더라. 그걸 보면서 도대체 땅속에서는 무슨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치매는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다.

- 희자에게 붙은 `4차원 소녀`라는 애칭이 배우 김혜자에게도 어울린다는 평가다. 예쁘고 다정다감한,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 내가 그런가? 모르겠다. `소녀`는 철이 안 들었다는 얘기인데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거 같다.

소녀는 모르겠고…. 이 드라마를 하면서 많이 배운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한다더니 신이 날 이렇게 만든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있고, 많이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걸 느낀다. 나이 먹어서 뭐하나 했는데 이런 드라마 만나 연기하는 건 축복이다. 내가 다시 배우로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작품이다.

내가 이렇게 작은 역할을 하기는 처음인데도 대본에서 볼 게 너무 많다. 다섯 여자의 인생이 다 얽혀 있다 보니 대본 안에서 들여다볼 게 많다. 그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게 흥미롭고 진력이 안 난다. 또 5명의 여자가 연결된 신이 많아서 한두 마디 하려고 다 함께 기다리며 촬영하는 게 많은데, 그동안 조연과 단역들이 (주연인 내가 연기하는 동안) 이렇게 기다렸겠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도 했다.

- 베테랑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는 게 즐겁겠다.

△ 물론이죠. 그런데 `즐겁다`는 아니고, 반갑다. 너무 반갑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나. 다른 배우들 연기 보는 재미도 크다.

정아 역은 `나문희 이상 갈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라면서 매번 감탄하며 본다. 윤여정은 어떻고. 충남이 나이 어린 교수들에게 “니들이 제일 잘못한 건 니들이 얼마나 잘난지 모른 죄”라고 할 때, 고두심이 아픈 엄마에게 “나 속 썩이려고 병원 안가냐”고 악다구니 쓸 때 기가 막히지 않나. 박원숙이 옛 연인과 재회한 장면은 잠깐이지만 그간의 세월이 느껴졌고, 주현 씨는 얼렁뚱땅하는 것 같지만 다 표현한다. 신구 씨는 이번에 처음 연기하는데 정말 잘하는구나 한다. 내가 신구 씨를 이제야 처음 만난 걸 보면 아직 연기해야 할 게 한참인 것 같다.(웃음) 시청자도 딴 데서 못 본 걸 이 드라마를 통해 발견할 거라 믿는다.

- `디어 마이 프렌즈`는 배우 김혜자에게 어떤 작품인가.

△ 배우로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하고 싶다. 아름다운 드라마, 순하고 희망이 되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아무도 안 보는 드라마가 무슨 소용이 있나.(웃음) 이 드라마는 시청률도 잘 나온다고 하던데 이 드라마가 내게 그걸 다 충족시켜줬다. 너무 슬퍼서 아름답다. 오랫동안 꿈꾸고 있던 걸 이뤄준 작품이다.

연극으로서는 1인 11역을 한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내 꿈을 이뤄줬다면, 드라마는 이 작품이다. 최근작 중 단연 이 드라마가 최고다. 내가 그 여자로 인해 쓸쓸한 것도 좋다. 한없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나이가 들었으니 쓸쓸한데, 좋다. 그 쓸쓸함이 좋다. 인생에서 버릴 토막은 없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