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비밀 경주 고분을 찾아서
⑧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한정호 교수

▲ 경주의 고분과 유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한정호 교수.

경주 각처에 산재한 신라의 고분 속에서는 미려한 금관과 화려하게 장식된 말안장을 포함한 수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우리 선조의 축적된 정신적·문화적 기술로 빚어낸 이 유물들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까? 또한, 고대 유물은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안고 불교미술을 전공한 고고학자 동국대 한정호(46) 교수를 만났다. 아래는 “유물과 유적의 발굴은 인류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말하는 한 교수와 나눈 이야기다.

거대한 적석목곽분은 도굴에 비교적 안전해 온전히 남아 있어

비단벌레 형상화한 황남대총 출토 말안장 가리개 `옥충안교` 눈여겨 볼만

`금제유물` 다량 출토는 북방 유목민과 밀접한 관계 추정 가능

학계, 지나친 학문중심 사고 반성… 인력투자 등 정부지원 전환도 절실

- 신라시대 고분에서는 적지 않은 유물이 발견됐다. 금관총에서만 1만1천500점 이상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것들 중에서 당신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주목의 이유는 무엇인가?

“내 전공은 불교미술이다. 하지만, 고분에도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가장 큰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본 것은 황남대총에서 나온 `옥충안교`(말안장 가리개)다. 장식기법이 대단히 특이하다. 금속으로 된 유물인데 비단벌레를 형상화했다. 가까운 일본의 유물 중에도 비단벌레가 그려진 것이 있다. 비단벌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찾아보기 힘든 곤충이다. 옥충안교는 비단벌레 그림을 바탕에 깔고, 금동으로 장식된 유물이다. 이건 일반 공개가 어렵다. 무덤 안에서 나온 것이라 외부에 노출되면 산화된다. 그런 이유로 출토 당시 그대로 글리세린 용액에 담아 보관 중이다. 옥충안교는 신라와 고구려, 그리고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짐작케 해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 경주에서 발굴된 신라 고분 속 유물이 동일한 시기에 존재했던 타 지역(고구려·백제·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구분되는 점은?

“삼국시대의 신라와 통일신라시대는 유물의 구성요소가 다르다. 신라의 고분과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지역의 고분은 거의 없다. 왜냐면 대부분 도굴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연구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신라의 유물이 더 소중한 것이다. 사실 통일신라시대 이후은 고분은 상당수가 도굴됐다.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적석목곽분의 형태를 취한 고분이다. 적석목곽분은 도굴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다. 워낙 규모가 크니까 몇 사람이 잠깐 동안 파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적석목곽분이 아닌 방의 형태로 만든 돌방무덤(石室墳)은 그 구조상 도굴이 용이했다. 적석목곽분은 신라 고분에서만 확인되는 독특한 양식이다. 그 형식이 금관과 금제 허리띠 등 주요 유물의 도굴을 방지할 수 있었다.

 

▲ 경주의 고분 천마총에서 발굴된 말다래가 공개되고 있다.
▲ 경주의 고분 천마총에서 발굴된 말다래가 공개되고 있다.

- 경주에는 30기가 넘는 왕릉과 김유신 등 최고 귀족의 고분이 있다. 이 가운데 당신이 가장 눈여겨보는 고분은 무엇인지.

“신라 고분의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거기 매장된 주인공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앞으로 밝혀가야 할 과제다. 고분 인근의 사찰을 알면 왕릉을 파악하기 쉬워진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후 능사(寺·왕릉 인근의 사찰)가 생겼다. 왕의 제사를 올리고, 능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문무왕릉 인근 감은사가 대표적 능사의 하나다. 내 경우엔 파손된 고분에 더 관심이 간다. 경주 낭산 근처엔 황복사터가 있다. 그곳 탑에서 사리를 담는 함이 나왔는데, 거기에 “신문왕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그것으로 추정할 때 주위에 있는 파손된 고분은 신문왕의 무덤으로 보인다.”

- 신라는 `황금의 나라`로 불린다. 금으로 만든 출토유물이 다수라서 그렇다고 들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신라에 금제 유물이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사실 경주는 금이 흔한 지역이 아니다. 금광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어떤 연구자는 신라의 금이 금광에서 캔 것이 아니라, 물 속 모래에서 채취한 사금이라고 주장한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금이 있었다고 해도 왜 그렇게 금으로 만든 유물이 많은지는 별개의 의문이다. 중국은 금보다는 옥(玉)을 선호했다. 반면 북방 유목민족은 금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출토 유물도 금으로 된 것이 많다.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라는 북방 유목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접촉해왔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 경주의 고분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유물들.
▲ 경주의 고분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유물들.

- 아직까지 발굴의 과정의 거치지 못한 경주의 고분들이 여럿 있다. 왜 그러한 것인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는 건 대명제다. 그러니 올해 발굴하는 것보다 내년에 발굴하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10년 후면 더 많은 정보를 빼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엔 유적 발굴을 하다가 쥐똥이 나오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의 성분 분석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이 뭘 먹었고, 어떤 기생충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매장된 사람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성별은 물론 나이까지 알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유적 발굴기술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또 하나는 보존처리 기술이다. 이것 역시 후대로 갈수록 발전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 모든 걸 떠나서 유물은 `현재 상태`가 가장 안전한 상태다.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것을 인간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파내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는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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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의 고분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유물들.

- 고분을 `발굴-조사-연구-보존`할 경우 어떤 것에 가장 유의해야 할까?

“유물을 그 자체로 손상시키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하려는 노력이 기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발굴하는 사람의 능력이다. 사실 고고학계에서는 `발굴=파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건드리는 것이니까.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과 유물의 발굴 인력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좋은 연구자가 있어야 놓치는 것 없이 꼼꼼하게 유물을 검증하고 분석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이 원체 `속도전` 위주라 제대로 된 고고학적 연구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 황당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실생활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 과거의 유물을 조사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조금은 근본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유물과 유적에 대한 연구는 인류의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사람의 생명에는 한계가 있다. 백 년 이상을 사는 인간은 드물다.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축적돼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산다. 바로 그 시간의 총체가 유물이고 유적이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체험과 지혜는 우리의 존재기반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를 사는 우리는 복어를 요리해 먹는다. 독을 가진 물고기인 복어를 먹을 수 있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독을 제거하고 이 생선을 요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인류가 시간을 거치며 쌓아온 빼어난 지식의 집합체가 유물이다.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유물과 유적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파편이 아니다.”

- 현재까지 발굴된 신라의 고분 속 유물 중에서 고고학계 가장 주목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또 그 주목의 이유는 무엇인지.

“학자들의 관점과 전공분야에 따라 다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금관이 가장 매력적인 유물일 것이다. 신라 금관은 독특한 디자인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재료가 귀한 순금이라는 것도 매혹적이다. 그런 이유로 경주시의 상징물도 금관을 이용해 제작한 것이 많다. 신라시대에도 금은 귀한 광물이었다. 지배층의 고분에서 금으로 제작된 관(冠)과 허리띠 등이 발굴되는 건 그것 때문이다. 금이 원체 귀하다보니 금동을 만들어냈다. 동에다가 금을 입히는 방식 말이다. 이것이 당시 금의 가치를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고대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것이 적석목곽분이다. 이런 형태의 무덤은 신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것이다. 다른 지역 어디에도 적석목곽분의 형태를 보이는 무덤은 없다. 유사한 것이 몇 개 있지만 신라만한 독창성은 발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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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의 고분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의 유물들.

- 경주의 고분과 고분이 품고 있는 유물을 제대로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지나치게 학문중심으로 갔던 학계의 반성과 정부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유물의 발굴과 보존은 문화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다. 사실 문화 없이도 먹고사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먹고 살아가는 것에서 만족을 느낄 수 없는 존재다.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역사학계와 고고학계, 정부는 대중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문화를 찾아내고 알려야 할 책무가 있다. 내가 특히 경계하는 건 복원위주의 문화 정책이다. 사실 생명력이 다한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의 원형을 알 수 없는 우리가 복원에만 집착하는 건 코미디가 아닐까. 앞으로는 정부의 지원이 `사람에 대한 투자`로 방향전환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물과 유적에 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투자함으로써 보다 풍요로운 문화를 일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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