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가 제 구실을 못하면 행정부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방부가 2023년까지 이공계 병력 특례와 의경·해경 전환복무를 없애겠다고 한다. 이같은 대안은 다른 관련 부처들과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전문연구인력요원제도는 국가과학기술 인력정책의 핵심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라며 “이 제도가 폐지되면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 중견기업의 연구소 운영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공계 연구인력 부족현상이 초래되면 국가 과학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했고, 산업통상자원부도 미래부 교육부와 공조해 병역특례제도 존치에 나설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의대와 법대 등 권력과 돈에 관계되는 학과에 우수 인재들이 몰리고 다른 학과는 찬밥이다. 인문계는 노골적 퇴출 신세이고, 돈과 권력에서 먼 이공계도 그렇게 되는 것이 후진국의 일반적 현상이다.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세상인데 이공계가 소외되는 것은 시대역행이다. 그나마 병역특례로 이공계 인재들을 붙잡아 두었는데, 그것이 폐지되면, 이공계가 우대받는 선진국으로 빠져나갈 것이 분명하다.

중국 칭화대학은 이공계 대학이고, 그 대학 출신들은 정관계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공계 출신들이 권력에 관계되는 분야에 많이 진출하는 국가에서는 `특혜`가 없어도 자진해서 우수 인재들이 몰린다. 그래서 `테크노 클라시(기술관료)`란 말까지 생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외국에 있던 과학기술자들에 특혜를 주면서 불러와야 했다. 테크노 클라시가 없는 나라의 운명이다. 그런데 국방부가 `병역특례`까지 없앤다면 `과학입국`을 포기하는 일이다.

정치권도 부정적이다. 더민주당은 “중소·벤처기업 등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내놓은 것은 유감”이라 했고,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이공계 대체복무가 폐지되면 수천억원의 국민혈세가 투입된 연구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고,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의 인력부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 했고, 이화여대 전자계산학과를 나온 송희경 새누리당 당선인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AI병사`가 실전에 배치되는 시대에 과학기술인력을 빼낸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기획재정부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국회가 `2022년 말까지 시한을 6년 더 연장`했는데도 행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무리다. `종편시대`에 가뜩이나 지방신문의 입지가 좁아지는데, 정부지원까지 끊겠다는 것은 아예 지방언론을 고사시키겠다는 뜻이다. 대통령도 지방언론을 홀대하는데, 기재부까지 거들어서 지방신문을 없앨 작정인 모양이다. 지방자치시대에 지역언론을 고사시키면 그것은 자가당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