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락<br /><br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정열에 불타던 청춘 시절에 만나 일생을 약속한 부부는 그들만의 `인생 수레`에 두 개의 바퀴가 되어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과정 동안 둘은 수많은 갈등과 부부싸움,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재물의 형성이나 파산, 봉변을 당하거나 용서, 출세와 실패 등을 겪어가는 동안 어느새 백발의 머리에 잔주름이 가득한 노부부가 되어서 잘 걷지도 못하게 된다.

어느날 늙은 부부 두 사람이 산책하던 중 부인이 넘어졌다. 평평한 길에서 서로 팔을 잡고 천천히 걸었는데도 갑자기 쓰러지면서 허리를 삐어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이런 경우에 남편인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목욕하기, 화장실 가기, 옷 입기 등을 보조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는 여러 면으로 수발을 들지만 힘이 줄어든 상태여서 능률을 전혀 보이지 못한다.

이런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기 전에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 즉 청력, 기억력, 친구들, 삶의 아름다운 장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 등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무언가 계속해서 잃어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점점 많은 것을 잃어가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충족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근래에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할 경우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인들은 삶의 상당 기간을 쇠약한 노인이 되어 살아간다. 즉 노인의 몸은 점점 줄어든다. 그러나 노인은 힘이 아직 자기 몸에 조금만 남아 있어도 기쁨을 찾으려 한다. 그럴 때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이야기하면서 같이 시간 보내고 싶어 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시력은 점차 희미해지고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들을 수 있으며 기억력마저 줄어든다. 일상생활은 생각이 모호하게 흐려짐 속에서 일어난다. 부부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의미 없는 수준의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부부 중의 한 사람은 대화를 들어주려고 옆에 머물러 있다. 상대가 잊어버릴까 자기가 옆에 있음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부부 서로는 돌보는 것에서 또는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갖는다.

이때쯤까지는 그래도 상대에게 옷을 입히고, 씻기고, 먹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밤이면 서로의 팔에 기댄 채 포근하게 누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부부는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때가 이제까지 살아온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상대를 사랑하며 속속들이 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점차 어려워져가던 의사소통 방법이 이제는 모두 불가능하게 되어버린다. 이때는 바닥에 글씨를 써보아도 인식하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는 간단한 것, 예를 들어 옷을 입히는 것조차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악몽처럼 대단히 혼란스러운 일로 변해버린다. 둘은 말없이 누워 있고 사방은 조용한 적막강산의 어두운 밤이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더 깊이 망상에 빠진다. 이제는 더이상 서로를 돌볼 수 없다. 노약한 몸으로 겨우 숨쉬며 살아가는 동안 생기는 스트레스 등으로 심히 지쳐 있다. 자식은 이런 상태를 경험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옆에서 이런 장면을 보아도 많이 늙으면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각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후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때 할아버지는 허둥대면서 “내 몸의 일부가 없어진 것 같아요. 팔다리를 잃은 것 같아요”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제는 아내가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그리고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따뜻하게 사랑을 나누면서 함께 지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