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던 우리의 노래 문경아리랑
⑧ 이야기로 만드는 한류의 꿈

▲ 문경새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문경아리랑의 스토리텔링화는 `아리랑의 세계화`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섬진강 서쪽에서 주로 불린다고 하여 `서편제`라 부르는 소리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얼마나 되는가? 구절이나 가락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호기심만 생긴다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영화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이 세기말을 휩쓸고 다음 세기로 넘어와 다음 세대의 기억으로 든든히 자리잡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영화가 있었다.

새재길 금하굴에 전해지는 `지렁이설화`
현대적 상상력 더해 새 이미지로 재생
`문경` 배경의 소설·드라마 탄생도 기대

문경아리랑은 결국 `길`의 이야기
소설 `반지원정대`·웹툰 `신과 함께` 등
토속적 신화 인물 캐릭터화 시도해볼만


아리랑은 노래다. 그래서 고유의 리듬과 음악성을 배제하고 말이나 언어를 통해 미적 정서를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경아리랑의 사설과 가락과 곡조를 모르더라도, 문경아리랑을 후대에 길이 남길 방법이 있다. `서편제`와 같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서편제`는 영화이기 전에 소설이었다. 고 이청준의 작품이 감독을 감동시키고, 감독의 눈에 띈 배우들이 장단을 맞추고 소리를 남긴다. 문경아리랑이라고 이런 경로를 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서편제`처럼 소리꾼의 이야기여도 좋겠지만 상상을 소리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서편제`가 주는 감동은 가부장적 예술혼인데 한 글자로는 `한`이다. 한을 형상화할 방법을 꼭 소리꾼의 이야기에서만 찾아보자고 한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의 시인과 작가들이다.

그들에게 문경아리랑의 스토리텔링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이병일 시인은 “문경아리랑에도 설화나 탄생배경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현대적인 정서를 버무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통성과 결합해 재미있고 독특한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다. 옛것이 주는 익숙함과 현시적이지 않은 특징 때문에 낡고 닳은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안에는 은폐된 역동성이 있다. 창작자로서는 그 숨겨진 역동성을 발견해 내는 일이야 말로 흥미를 끈다. 문경새재 넘어가는 길에 금하굴이 있다. 견훤과 관련된 지렁이 설화가 얽혀있는 곳이다. 이런 상상의 이미지는 새로운 이야기와 이미지를 불러낸다.”

시인이 예로 든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후백제 견훤의 설화다. 설화에 따르면 견훤의 아버지는 토룡이다. 여기서 토룡은 지렁이를 말한다. 동침하고 사라지는 남자의 옷에 부호의 딸이 몰래 실을 꿰어 둔 바늘을 꽂아둔다. 날이 밝은 뒤 그 실을 따라가 보니, 커다란 지렁이의 허리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에는 오래 묵은 지렁이를 용이 되기 전 단계라고도 했다. 이병일 시인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로 시를 쓰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이 시인의 상상력은 문경아리랑이란 노래 안에서 고개를 밖으로 돌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재미있는 요소들을 향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옛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걸 좋아해요. 드라마 `정도전`, `장영실`, `육룡이 나르샤`를 보세요.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야기를 고전적인 아름다움 속에서 펼쳐내죠. 의복이나 어법을 비롯한 역사적인 풍습 속에서요. 옛것은 낡은 게 아니에요.”

□ 드라마의 가능성이 곧 한류의 가능성

영화나 드라마는 현대의 가장 파워풀한 매체다. 문경아리랑을 알리는 데 영화나 드라마처럼 좋은 매체는 없을 것이다. 이 시인처럼 문경아리랑의 주변과 저변에서 매력을 느끼는 드라마 창작자들에게 만일 문경아리랑을 알리는 임무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근래에 문경아리랑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발해졌다고 하더라도 당장 문경아리랑의 역사적 기원이나 전승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

소설가 이은선 씨는 옛것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심취해 있다. 옛것을 그대로 살려내는 재미에 빠지는 작가들도 있지만, 이 씨처럼 현대화하는 데서 작업의 힘을 얻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말하는 현대화란 어떤 것일까? 작가마다 대답이 다를 것이 당연하겠으나, 이들의 현대적 상상력이 어떨지 기대하게 해줄 작품이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고 신기섭 시인의 작품 `문경`이 그것이다. `문경`은 한 편의 시지만, 수십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의 깊이를 담은 작품이다.

“아리랑을 소설로 쓴다면 뻔한 얘기나 한스러운 얘기 말고 현대적 감각에 맞는 에피소드들을 총동원할 것 같다. 아리랑의 현대화가 계속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구전되면서 그 긴 시간들을 다 이겨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리랑은 끊임없는 현대적인 변형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노래다. 그 옛날에도 아리랑은 진화해왔다. 아리랑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형될 것이다. 소설가로서 옛것과 끊임없이 교신하는 매체로서의 아리랑 다시쓰기를 해보고 싶다. 토속적인 장면에서 떠올리는 아리랑이 아니라 현대적인 장면에서 떠올리는 아리랑을 생각한다. 요즘은 엽전 위조범의 아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오히려 과거의 소재들이 내 관심을 끄는 편이다.”

이 씨 같은 소설가들의 관심과 작업이 지속된다면, 문경이라는 도시에 담긴 근대적 풍경과 현대적 인물이 소설이나 드라마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문경아리랑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아리랑에 근대화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우리는 확인한 바 있다.

□ 장기적인 투자로서의 문학제

강원도 정선군의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정선아리랑 문학상 공모전`을 개최했다. 정선아리랑 콘텐츠 개발을 위한 원천 스토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조정래의 `아리랑`이라는 대하소설이 출간돼 성공을 거둔 예가 있으니 한번쯤 눈을 줄만한 공모전이다. 그런데 공모전을 통한 콘텐츠 개발의 한계도 뚜렷해 보인다. 아리랑 하면 이미 관심사에서 멀어져 있는데다가 낡은 느낌을 준다. 민족주의적인 색채도 쓰는 쪽이나 읽는 쪽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공모전의 수상작이 이름을 얻고 불후의 명작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같은 출판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고 할지라도 작가의 개인적 성취로만 남는 일이 더 많다. 사람들에게 이슈가 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문학시장 자체가 너무 작다.

물론 어떤 이는 작은 시장을 이점으로 여기기도 한다. 투자비용이 적고 오래 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작품이 탄생하면 지금 당장은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 당장의 소득은 없을지라도 씨앗을 심는 정도의 의미가 있다. 소득이 눈에 당장 띄지 않더라도 지역의 세계화에 오래도록 기여하는 방법이 문학임을 더 말해 무엇할까. 다만,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재능 말고도 확인할 것이 있다. 
 

▲ 왼쪽부터 옛것을 새것으로 바꿔 성공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여행담의 모습으로 한국 독자들과 만난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 원정대`, 남도 가락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영화 `서편제`
▲ 왼쪽부터 옛것을 새것으로 바꿔 성공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여행담의 모습으로 한국 독자들과 만난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 원정대`, 남도 가락을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영화 `서편제`
□ 문학의 힘은 보편성에서 온다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서사구조가 강한 그림책이나 동화는 많이 들어오지만 그 나라의 전통적인 정서가 강하면 우리 정서와 안 맞는다는 명분 아래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이자 아동문학가인 김서정 씨는 전통적 소재가 아동출판 시장에서 접해온 장애를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 책은 어른책보다 보수적이고 국수적인 성향이 있다. 동화가 어른들의 가치체계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용도로 발생된 의도적인 장르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이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나라의 가치관이나 문화를 도입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데, 자기 나라의 문화는 열심히 가르치려고 한다.”

이 말은 두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는 계몽성이 문화적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두 번째 의미는 출판시장의 거부반응이 말해준다. 그동안 아동출판시장에서는 이른바 한류에 도전했던 작가의 기획들이 `한국적 가치체계`를 대중화하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김서정 교수의 말은 한국의 작가들이 아리랑에서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길어 올릴 때 세계화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 길 이야기의 뿌리를 찾아서

문경아리랑은 결국 `길`의 이야기다. 길을 걷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길가는 이들이 서로 무리 짓는 데서 오는 반가움이 문경아리랑에 담겼다. 천리길이 품은 특수성은 셀 수 없기도 하겠지만, 기나긴 길의 이야기에서 보편성을 찾아낸다면야 왜 없겠는가.

반지 이야기를 영화화한 `반지 원정대`는 서로 원한 어린 종족이 하나의 무리를 짓는 데서 감동을 자아내는 이야기다. 두 번째로 영화화된 `두 개의 탑`에서는 베어지는 나무들이 주요한 캐릭터로 동원되었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J. R. R. 톨킨은 북유럽 신화와 고대 언어로 오늘날의 판타지 장르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이제는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톨킨의 이 반지 이야기도 1980년대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는 제목이 `머나먼 산, 머나먼 강`이었다. 북유럽의 낯선 문화는 산과 강을 내세운 여행담의 모습으로 아이들과 만났던 것이다.

주호민 씨의 `신과 함께`는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길을 다룬 웹툰이다. 토속적 신화 인물을 캐릭터화 해서 흥행하는데 성공했으며, 한국적 신화를 현대적 테마로 되살려내면서 평자들의 호평도 얻어냈다. 토속의 현대적 상상물이라는 어려운 미션을 그야말로 신화적으로 수행해낸 셈이다.

작가가 다양한 매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작품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기획의 산물이다. 한국의 신화를 공부했으며, 공부한 바를 분류하고, 분류된 지식 중에서 대중의 흥미를 끌 요소를 스토리화하는 과정에서 전진 배치함으로써 대중의 반응을 `유도`했다.

문경아리랑이 웹툰으로 만들어진다고 가정해보자. 전통적 요소가 착수단계부터 한계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작가가 어떤 자료를 수집하고 거기서 어떤 영감을 얻는지 어떻게 제한하여 짐작할 수 있겠는가. 사회가 할 일은 우리시대 웹툰 작가를 비롯한 모든 분야의 창작자들이 문경아리랑에 관해 읽을거리와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준비해놓는 것이다.

자료 가운데 어떤 것이 영감을 줄지 예단할 수는 없다. 자료가 많을수록 상상할 여지도 풍부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극과 퓨전극이 여러 방송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는 역사학과 드라마 시장을 잇기 위해 역사콘텐츠라는 학문까지 낳았다. 역사가 풍부해야 드라마도 히트할 수 있음을 이미 여러 사람이 알고 있다. 문경아리랑을 어떤 식으로건 다룬 웹툰이 나오기까지는 작가의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가 오래도록 합의해서 쌓아온 자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이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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