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던 우리의 노래 문경아리랑
⑦ 아리랑을 함께 호흡할 공간의 필요

▲ 문경아리랑 상설 전시공간이 마련된 옛길박물관 전경.

관광 해설자 이춘자 씨에게 물었다. 문경새재를 찾은 관광객들은 어떤 식으로 문경아리랑을 접하고 가게 될까? “아시다시피 옛길박물관에 아리랑 상설 전시 공간이 있고요. 문경새재 옛길 2관문에 또 문경 아리랑 비석이 있어요. 비석 옆에는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스피커가 있어서, 자연 속에서 아리랑을 눈으로 보고 귀로도 들을 수 있죠.”

문경시는 실제로 얼마 전 박달나무를 새로 심었다. 생태공원을 들러 가지 않는 관광객들도 문경의 명물인 박달나무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관광 해설자 입장에서도 더 자연스럽게 문경 아리랑의 대표사설을 소개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문경시에서 성황리에 매년 열리는 축제는 `달빛 사랑 여행` `전통 찻사발 축제` `맨발로 걷기 대회` 등이다. 사과와 오미자, 한우축제도 있다.

축제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하룻밤 자면서 이벤트를 제대로 즐기고 가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문경문화원에서 주최하는 `달빛 사랑 여행`은 과거시험길을 직접 체험해보는 야간 이벤트다.

문경새재라는 명승지의 풍경과 달밤 산길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축제다. 이벤트 중에는 `문경 아리랑 공연`도 있다. 그런데 이춘자 씨의 말에 따르면, 이 공연은 일방형이라고 한다. 함께 부르고 어울리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14년째 펜션 `강이 있는 풍경`을 운영해 온 김희태 씨는 “문경을 찾는 관광객들의 90퍼센트 이상이 문경새재를 거쳐 간다”고 말했다. 문경시의 관광문화개발이 문경새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경새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펜션임에도 불구하고 시에서 치르는 여러 축제들이 숙박업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전무하다고 한다.

“축제 기간 동안 문경새재 입구는 복잡해지는데 숙박 관광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문경이 지리적으로 중앙에 위치해 있잖아요.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숙박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거죠. 몸소 체험하는 축제가 없으니 관광객들의 발을 붙들지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체험하는 축제로는 맨발 걷기 대회라는 체험 축제가 제일 나은 것 같아요.”

실제 문경에서 펜션을 운영한다는 것은 관광객의 요구 사항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저희 같은 사람들의 의견도 좀 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 씨의 말은 그래서 더 일리 있어 보인다.

“관광객들은 전통문화에 흥미를 느껴요. 체험 관광을 좋아하죠. 레일바이크가 그렇고 걷기대회가 그렇습니다. 문경은 정말 문화적으로 활용할 것들이 무궁무진한데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문경시민으로서 답답해요.”

□ 관광객이 머물만한 매력적 환경 만들어야

김 씨는 흥밋거리를 만들어 하루 묵을 걸 이틀 묵게 만들어주는 것이 문경시에서 관광업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며 그것이 결국에는 문경의 산업이라고 했다. 방문객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두 사람이 하는 말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 뭔가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필 문경시 관광진흥과장에게 아리랑이 관광과 축제에 어떻게 접목되는지 직접적으로 물었다. “지금 현재 아리랑 축제를 기획하진 않았습니다. 민간단체들이 주도적으로 해나가면서 시에서 후원을 해주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김희태 씨나 이춘자 씨가 들었다면 섭섭할 얘기다. 그러나 내막을 알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민속원이 펴낸 `새로운 축제의 창조와 전통축제의 변용`에서 이승수 씨는 문화관광축제의 문제점을 여섯 가지로 압축했다. 그 중 네 가지가 축제를 벌이는 주체의 문제다. 지역을 다녀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점이 관 주도형 축제가 많다는 것이다.

관이 주도하면 아무래도 운영상 경직성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공금을 집행하는 데서 관은 아무래도 느리고 조심스럽다. 역동적인 운영을 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관이 주도하다보면 시민의 자발성은 아무래도 식는다.

민간과 관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이 아리랑 축제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이란 다름 아니라 `아리랑에 대해 기대하고 오는 관광객들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수요가 불명확한데 적극적으로 수요를 창출하기가 과연 관의 입장에서 쉽겠는가. 관광축제는 지역의 누구나 필요성을 느끼기는 하지만, 시장의 자발적 힘으로 실현시키기엔 걸림돌이 의외로 많고도 크다. 김희태 씨의 견해와 달리, 관광축제는 콘텐츠로서 덜 매력적이라는 것이 전문연구자의 지적이다. 문경시는 세계군인체육대회처럼 큰 규모의 사업에서 다른 지자체라면 빠지기 쉬울 적자의 늪을 뛰어넘어 흑자를 보여주고, 도단위 경창대회가 생기자 시단위 경창대회를 폐하는 등의 효율성을 보여준 적이 있다. 겹치는 행사를 축소시킬 줄 안다는 것은 효율을 위해 그만큼 과감하다는 뜻이다.

조급하게 만들어 망치느니 준비된 선수에게 외주를 주어서라도 자발적 참여를 후원하고 싶다는 입장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자발적 참여를 후원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외주를 줄 수 있다는 뜻이리라. 민간업체가 어느 정도의 지원금을 받아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김희태 씨는 이에 대해 “외주를 맡겼을 때 지역색을 잃어버리고, 단편적인 내용의 행사들이 주를 이루게 돼 있다”고 말한다.

다들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행사를 도맡아 할 줄 아는 누군가 주도해서 지원금을 타내고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관이 주도하지 않는 문화관광축제는 안 그래도 주체가 불명확한데 이런 잡음마저 들리면 형평성의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관광축제 연구자가 제기한 여섯 문제 중 하나는 축제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는 지역이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지역축제는 누군가에게만 상대적으로 희소식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외주를 줄 경우 외주업체가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합의 이 같은 저해요소를 시가 섣불리 지원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시민들이 참여해 체험의 공간이 되고 있는 전통 찻사발 축제의 모습.
▲ 시민들이 참여해 체험의 공간이 되고 있는 전통 찻사발 축제의 모습.

□ 테마가 있는 `아리랑 민속마을` 조성에 노력 기울여

행사가 많은 도시일수록 지역행사에 의존하는 전문업체의 생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전문업체들의 경영마인드는 창의적이기 쉽지 않다. 노래로 치면 이미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고, 실험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는 쪽의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울산의 산악영화제에 참여한 케이터링 업자 나종하 씨의 말도 참고할 만하다. 그는 오십 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부스를 마련했다. 모든 수익은 자신이 가져간다는 소리에 재료도 신나게 준비했다. 그러나 행사가 열린 사흘은 케이터링 업자인 그로서는 처참했다. “마지막 날 설비 대여료를 치를 때 대여업체와 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나 씨는 말했다. 줄 돈이 없었던 것이다.

지역행사를 쫓아다니는 이른바 `보따리장수`들의 경험이 이러하다. `문화서비스업`이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수요 한 줄기가 자리 잡기까지 축제라는 시장 자체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다.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언제나 있었고, 그에 따른 합의와 예산도 탄생해왔다. 그러나 이 투자는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결국엔 시정을 담당한 이들도 머쓱해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다수의 지자체 입장에서 이 생존의 길은 운명이다. 대체 축제는 어때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민속촌의 사례는 전통체험이라는 시장의 수요를 어떻게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한 예다.

한국민속촌은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할 때는 정작 없었던 줄임말을 만들어냈다. `벨튀`가 그것이다. 민속촌은 1970~80년대에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심정을 느끼게 한다. 대문 안에는 주인을 연기하는 단역이 있어서 화를 버럭 내주기도 한다.

이종필 과장은 “문경새재 아리랑을 보급하고자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합니다. 문경읍 고요리의 고요 아리랑 민속마을을 조성한 이유가 그것”이라고 했다.

고요리는 아리랑 마을로 지정된 하초리와는 십 리 넘게 떨어진 곳이다. 하초리가 문경아리랑의 기원지로서 기념비가 세워진 것은 맞지만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도 따로 길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하초리가 기념장소인 동시에 살림공간이라면 고요리는 응접공간인 셈이다. 고요리에서는 노래를 배울 수도 있고 부를 수도 있다. 테마가 있는 아리랑 민속마을을 조성해서 관광객과 문경이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 계획이다. 체험, 전시 등을 주민과 관계자들이 계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고요리 중간계획 보고회에서는 관광객들이 테마 숙박을 하면서 아리랑 전수와 연수도 하는 프로그램이 그려졌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그려보고 싶다. 문경새재 길에서 옛날에 있었을 법한 사건과 캐릭터들을 재현해낼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이 사업을 함께 하는 그림이다.

소설 `객주`의 인물들이 오갈 수 없을까도 싶고, 과거만 십년 째인 `잉여`선비들이 철없는 객담을 건네다 관광객에게 구박을 당하는 코미디가 있으면 어떠할까도 싶다. 호랑이 사냥꾼의 호위를 받으며 달빛 여행길을 걷는다거나, 대동여지도를 펼치며 출발지와 행선지를 묻는 김정호를 만나보고도 싶다. `걷기`로 나날이 유명해지는 문경새재의 아련한 길에 누군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드라마틱한 그림을 그려줄 수는 없을까.

강남진 기자/이소연 시인

 

    이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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