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사는 새터민 김대한씨
개인운송사업 실패 생활고
일용직 전전하다 허리 다쳐
남부서 안옥출 경위 도움
성모병원서 치료 再起 각오

▲ 포항남부경찰서 안옥출(왼쪽) 경위와 성모병원 베로니카 수녀가 디스크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김대한(38·가명)씨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찬규기자

“경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 진통약으로 버텨야 했겠죠.”

한국사회 적응을 위해 억척같이 돈벌이를 하다 허리디스크를 얻어 절망하던 북한이탈주민(새터민)이 포항남부경찰서와 포항성모병원의 도움으로 희망을 되찾았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2014년 12월 현재 국내 입국한 새터민은 2만7천500여명. 사연의 주인공인 김대한(38·가명)씨도 그들 중 하나다.

김씨는 지난 2011년 말 북을 떠나 홀로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태국을 통해 입국한 그는 통일부 소속기관 하나원에서 새터민 의무교육을 3개월 받고 포항에 둥지를 틀었다. 많은 새터민이 `서울살이`를 열망하지만, 평소 바다를 동경했던 그는 희망거주지역으로 포항과 부산을 선택했다.

요즘 적지않은 젊은이가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헬(Hell) 조선`으로 풍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씨는 `본인만 열심히 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는 나라`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먼저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일용직 근로자로 일했다. 모든 일에 꼼꼼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파견 나갔던 회사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그는 곧 포항지역의 한 공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희망이 커가던 중 시련이 닥쳤다.

지인의 권유로 개인운송사업을 하고자 5t 트럭을 구입했는데, 현실 물정에 어두워 2천500만원 가량의 금액을 손해 본 것이다. 어렵게 시작한 운송사업마저도 벌어들이는 돈보다 중고로 사들인 화물차의 수리비가 더 들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화물차를 헐값에 처분했고, 비교적 보수가 많은 일용직과 조선소 등을 전전하며 억척같이 버텼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을 하며 무거운 것을 나를 때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의지할 곳 없이 홀몸으로 타향살이하던 그가 기댄 곳은 바로 `대한민국 경찰관` 포항남부경찰서 정보보안과 보안계 안옥출 경위다. 비록 새터민 보호·관리라는 경찰의 업무적인 관계로 인연이 됐지만, 북에서 왔다는 선입견 없이 항상 관심과 배려로 다가왔기에 `삼촌`이라 부르던 사람이었다.

김씨의 기구한 한국살이를 알고 있던 안옥출 경위는 그의 허리치료를 돕고자 다방면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던 중 다른 부서에 근무하며 친분을 쌓았던 원유술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교구장 대리 신부로부터 한통의 연락을 받게 됐다. 이종녀 포항 성모병원장이 도움을 약속했다는 희소식이었다.

이후 김씨는 안옥출 경위와 함께 성모병원을 방문했고, 사회복지담당 업무를 하는 베로니카 수녀의 도움을 받아 MRI검사를 받았다. 허리디스크로 확인된 후 2차례에 걸친 시술이 이어졌고, 지난달 25일에는 디스크가 터져 거동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또다시 안 경위와 성모병원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김대한씨는 “외로움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인데, 친 가족처럼 돌봐준 삼촌(안옥출 경위)과 성모병원 덕분에 몸도 고치고 힘들었던 마음도 치유됐다”면서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면 북에 있는 부모님과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는데, 한국에도 믿고 의지할 가족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안찬규기자 ac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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