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환<br /><br />작가
▲ 이대환 작가

이번 설 연휴를 서울에서 지내며 심심풀이 쯤으로 영화 `검사외전`을 보았다. 정의구현의 해피엔딩이었다. 젊은이가 하듯이 사이버공간에다 한마디 소감을 남긴다면 “시나리오의 짜임새가 돋보였다”고 적어주겠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에 접어들어서부터 내 머리와 마음에 마치 잘못 삼킨 찰떡처럼 찜찜한 무엇이 달라붙었다. 출세와 돈과 권력만 추구하는 부패세력의 전형적 인물로 등장하는 우종길 차장검사(이성민 역)가 여당(창조국민당)의 정치 신인으로 변신해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나섰는데, 아무리 허구라지만 하필 그 지역구가 `포항 북구`였다.

더욱 놀란 것은 우종길의 슬로건인 `포항의 아들`이었다. 감독이 `포항의 아들`이라 하자니 조금은 포항시민에게 미안했는지, 얼핏 스쳐가는 우종길의 짧은 대사 중에 자신이 진짜 포항의 아들은 아니라는 말이 섞여 있었다.

영화계는 `검사외전`이 설 연휴를 지나기 바쁘게 500만 관객을 끌어들일 것이라 예측한다. 배우 황정민이 또다시 1천만 관객의 흥행대박을 터뜨리는 슈퍼스타로 등극할 모양이다. 그러나 포항시민과 포항은 어떻게 되겠는가?

황정민이 주연을 맡은 영화 `국제시장`을 포항시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부산 국제시장을 얼마나 홍보했는지도 알고 있으며, 국제시장에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얼마나 이바지했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검사외전`은 포항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나쁜 이미지일망정 1천만 관객에게 `포항`이라는 이름을 홍보해주니 감사해야 하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에는 `물회`먹는 장면 하나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고향(포항)을 위해 제일 잘한 일의 하나가 죽도시장에서 물회 먹는 소식을 언론에 태워준 것이라 하니, 이제 물회 홍보는 없어도 좋다는 것인가?

`검사외전`이 조만간 1천만 관객을 끌어들이게 된다면, 대략 포항시민 10만명이 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라스트신에 도달한 즈음에 법정에서 발광을 하다 체포되는 우종길 후보가 포항 북구 경선에 출마하여 `포항의 아들`이라고 외치는 장면에 대해 과연 포항시민이 어떤 소회를 맛볼 것인가?

영화가 끝난 뒤에 나는 혼자서 걸으며 몇 년 전부터 포항 국회의원들이 한국사회에 각인시킨 `나쁜 이미지`를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포항 남구에서 5선까지 지낸 의원은 감옥을 나와 다시 불구속 기소됐고, 그의 뒤를 이어 받았던 초선은 도덕의 도마 위에서 금배지를 빼야 했으며, 포항 북구의 4선 현역 의원은 부패 스캔들로 시끄럽더니 불출마 선언을 했다.

지금은 포항시민이 떨치고 나설 차례다. `검사외전`이 새삼 전국적 망신살을 안겨준 포항의 정치적 부패 이미지를 스스로 씻어내야 한다. 이렇게 심각하고 중대한 시기에 몇몇 시의원들이 문제의 포항 북구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연출했다. 무슨 꿍꿍이로 왜 부끄러운 행태를 벌였을까? 시민들이 훤히 짐작할 것이다. 그들은 양심에 손을 얹고 그것이 포항의 나쁜 정치적 이미지 씻어내기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국회의원 후보경선에서도 유권자들은 특정후보를 택하기 마련이다. 선거운동을 해주고 싶다면, 각자가 알아서 합법적으로 하면 된다.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을 폐지하자고 주장했거나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시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다. 국회의원은 지역민이라는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조각배에 불과하다. 하물며 기초의원 몇몇이 무리를 지어서 자기네 의도대로 민심을 움직여 보겠다고 언론 앞에 나서는 것은 한낱 착각이고 무지일 뿐이다.

`검사외전`은 문득 나를 눈물겹게 했다. `이 영화가 이번에는 포항시민이 스스로 포항의 정치적 부패 이미지를 씻어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지 않겠는가.` 이런 기대감을 나는 차가운 거리를 한참 걸어가서야 뜨끔하게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