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배신의 계절이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지목한 사람은 유승민 의원이었다. 친박계로 분류됐던 유 의원은 원내대표 취임연설에서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증세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공격하면서 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라섰다. 사실 같은 당내에서 당론, 혹은 청와대의 뜻과 다른 주장을 펼쳤다고 해서 배신이라고 낙인찍는 경우는 그리 흔치않다. 요즘 최경환 의원이 박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진박마케팅`을 통해 `TK 물갈이론`을 관철시키려는 모양새지만 배신의 정치가 어떤 심판을 받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설 민심이 어떻게 요동치느냐에 따라`진박마케팅`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니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문제는 그토록 배신을 싫어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들이 잇따라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나드는 `월경`(越境) 행보로 배신의 행렬에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배신의 나팔`을 분 건 이번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전 의원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모태`가 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투신했던 김 위원장은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 소속 전국구 의원을 3차례 지낸 정통 보수 인사였다. 이후 2004년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깜짝` 변신하더니, 2012년 대선 국면에선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박근혜캠프에 합류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정부여당과 각을 세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섰다.

배신의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행을 발표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2014년말 정치권을 뒤흔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됐던 핵심 당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감찰과 대통령 친인척 관리업무를 담당했다. 현 정권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일제히 “의리를 팔아먹고 대통령 임기 중에 (야당으로) 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맹비난에 나선 것도 그만큼 그가 위협적이란 방증일 수 있다. 청와대의 핵심 비서관을 지낸 인사가 그 정부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청와대를 향해 칼을 겨누는 야당 진영으로 `이적`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선거철에 당적을 옮기는 배신의 월경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 당에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합류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또한 여야진영을 넘나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박정희 정권 말기부터 YS정부까지 내각과 청와대에서 일해온 윤 전 장관은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떠났다가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의 국민통합추진위원장으로 등장했고, 2014년에는 당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제1차 독자세력화를 추진했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성식 전 의원이나 이태규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회 실무지원단장도 과거 보수진영에 몸담은 정치인이다.

그러나 요즘 여야진영간 벌어지는 월경은 최소한의 명분 조차 사라진 배신 그 자체다. 신념보다는 정치적 이익에 따른 행보로 읽히기 때문이다. 새정치를 지향한다는 `안철수 신당`도 오십보백보다. 친박계와 비박계간 내전상태인 새누리당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정치판이 권력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박쥐 떼들로 어지럽다.

일각에선 자꾸 배신을 당하는 사람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단다. 주변 사람이 떠나는 데도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논어에서 섭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먼저 가까이 있는 자가 만족해하도록 힘써야 한다. 가까이 있는 자가 기뻐하면 먼 곳에 있는 자는 스스로 모여들어 복종할 것이다.”

신뢰의 정치를 지향해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더욱 뼈아픈 배신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