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 마을과 들을 동무 삼아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경산 반룡사.<br /><br />
▲ 마을과 들을 동무 삼아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경산 반룡사.

잔뜩 찌푸린 하늘을 달래며 반룡사를 찾아 나선다. 절은 깊은 산속이 아니라 마을과 들을 동무 삼아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넓은 주차장 위로 성벽처럼 둘러싸인 석축과 큰 누각이 위용을 자랑하지만 깔끔한 전각들이 조금은 어색하다.

반룡사는 661년(문무왕 1년) 이 지역 출신인 원효 대사가 창건하였다. 신라 삼국 통일의 성업을 달성하기 위한 호국도량으로 한국의 3대 반룡사(경산, 고령, 평양) 중 하나로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고려 중기에는 원응국사가 중창하여 신흥사로 불렸으며 수많은 고승과 명사들이 줄지어 찾아와 한 때는 5개의 암자와 26개의 당우를 가진 대가람이었다. 그 후 반룡이 승천한 격이라 하여 반룡사라 명명하였지만 영화롭던 절은 배불정책의 폐해와 원인모를 화재로 폐사되었다가 복원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높다란 계단을 따라 경내에 들어서자 굽이굽이 이마를 드러낸 산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방금 달려왔던 시골길은 다시 산을 향해 나아가고,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사하촌의 풍경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반룡사의 유물은 흥망을 거듭하면서 다른 사찰로 옮겨지거나 도난당하고, 석조 부재들만 마당 한 귀퉁이에 남아 과거를 회상한다. 낙조의 아름다움을 읊은 이인로 선생의 시조차 애잔하고 쓸쓸하다.

이곳은 강수, 최치원과 함께 신라 3대 문장가로 불리며, 우리 민족 최초의 글인 이두 문자를 집대성한 설총이 그의 어머니 요석 공주와 어린 시절을 보낸 사찰이다. 태종 무열왕 김춘추 내외는 딸 요석공주와 설총을 만나기 위해 절 뒤에 있는 왕재를 넘어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라를 대표하는 성현의 삶과 정신이 담긴 절집치고는 너무나 허전하다.

대가람으로서 찬란했던 한 때를 알 리 없는 전각들은 먼 데 산을 볼 뿐 말이 없다. 절집을 지키는 노송이나 오래 된 느티나무, 좌선대로 쓰였을 법한 흔한 바위조차 보이질 않는다. 가난한 상상력에 불을 지펴줄, 원효와 요석의 애달픈 사랑이나 총명한 설총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할 무언가를 찾아 나는 경내를 헤맨다. 계절조차 을씨년스러워 마음이 더욱 찹찹하다.

대웅전을 지키는 일타 스님의 필체가 유난히 돋보인다. 물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황금빛 기운 속에서 나는 야심찬 희망을 엿본다.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해 보지만 1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기란 쉽지 않다. 새 전각은 낯설기만 한데, 역사적 설명이 장황한 안내문들이 자꾸만 발길을 붙든다. 오늘은 낙조의 아름다움조차 기대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태종 무열왕이 딸과 아들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다는 왕재로 향한다. 산길은 초입부터 가파르고 인적 없는 길 위에는 낙엽만 수북하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낮다. 낙엽이 발길에 차일 때마다 애틋함이 느껴진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산길을 오르며 나는 요석 공주를 생각한다. 사흘간의 사랑만 남기고 떠나버린 원효를 찾아 부른 배를 안고 도착하지만 거절당하는 요석, 그러나 지아비를 원망하지 않고 이곳에 머물면서 설총을 훌륭히 성장시킨, 내공 깊은 여인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마음이 바빠진다. 채 한 시간도 오르지 않았는데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가던 길을 되내려온다. 낙엽이 빗물에 젖어 미끄럽다. 몇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다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무엇을 찾겠다고 무모하게 이 가파른 산길을 올랐을까? 의상과 같이 당나라를 찾아가다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스스로 깨닫고 되돌아온 원효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그제서야 떠오른다.

정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며 반룡사를 바라본다. 무심히 비를 맞고 있는 전각들과 넓은 터가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무한한 가능성으로 꿈틀댄다. 고풍스런 건축미나 보물급 문화재를 찾느라 나는 반룡사가 면면히 지켜온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모든 것에 걸림이 없어야 생사의 편안함을 얻는다는 무애(無碍), 지금 내가 알고 깨달아야 할 것은 원효의 유물이 아니라 그 정신이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알리기 위해 그는 광대 복장을 하고 난해한 화엄경의 이치를 노랫가락에 담아 쉽고 재미있게 서민의 삶 속에 심었다.

 

▲ 조낭희<br /><br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자칫 계율을 어기고 욕망을 좇는 파계승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원효 대사는 거침이 없고 영혼이 자유로운 분이다. 매순간 그대로의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한 위대한 고승, 남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나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를 실천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사랑하되 집착을 내려놓은 원효와 지아비에 대한 믿음 하나로 흔들림 없었던 요석 공주를 떠올리며 천천히 비탈길을 내려온다.

겨울비 내리는 쓸쓸한 절 마당에 서서 한동안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시작도 끝도 없는 하늘, 그 어디쯤에 원효를 향한 요석 공주의 애잔한 그리움과 눈물이 서리어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그들의 못 다한 사랑이 황홀하게 피어날 반룡사의 멋진 낙조를 꼭 한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