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대마도에 놀러가자고 몇 사람이 굳게 약속을 했던 것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랬더니 이번에 시인들끼리 포항 구룡포에 원박투데이(1박2일)로 단체여행을 하는 김에 하루 더 놀다오자고 했다.

객지에서 노는데 웬만하면 하루면 됐지 무슨 이틀씩이나 하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그러자고 했다. 세월이 빠르다보니 금방 날짜가 닥쳐 여행 때가 되었다.

서울에서 포항까지 직접 가는 케이티엑스가 생긴 게 엊그저께니 그걸 타도 좋겠다. 하지만 시각이 여의치 않다. 신경주역에서 내려 구룡포 가는 마이크로 버스를 탔다. 25인승 차가 경주포항 간 국도를 달려 처음 당도한 곳이 구룡포 항구다. 바다, 하고 말하면 마음은 벌써 바닷빛이 된다. 그곳에서 옛날 일본 신사와 적산가옥들이 늘어선 골목을 둘러보고 추억의 물품들을 파는 곳에서 새총을 샀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난 것이다.

바다로 난 방파제를 사람들과 함께 걸으니 저녁빛의 운치가 있다. 이것저것 얘기도 하고 바다와 방파제를 배경 삼아 사진도 찍는다. 먹을 것이 많아 그런지 갈매기가 잔뜩 떼를 짓기도 한다. 방파제가 끝나는 곳까지 갔다오다 어디 잔돌멩이가 없나 찾아보았다. 갈매기를 새총으로 맞춰보자는 심사다. 마침 적당한, 동그란 잔돌이 있어 새총에 끼워넣고 고무줄을 당겨 저쪽 허공에 나는 갈매기를 향해 날렸다. 새가 내 활시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방향도 바꾸지 않고 유유히 날아간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처음부터 새를 맞추려는 노림이 아니었으니. 아마 제대로 겨냥했으면 한 마리쯤은 거뜬히 떨어뜨렸을 거라 해두자.

포항 명물은 역시 물회에 과메기다. 항구 근처 물횟집에 들어가 싱싱, 새콤, 달콤한 물회에 비린내 하나 없는 과메기 쌈에 저녁을 먹는다. 배도 든든, 멀리 2층 창가로 보이는 저녁 바다도 둥둥, 하루 해거름이 즐거움에 찬다.

우리 일행은 이제 구룡포청소년회관에 들어 여장을 풀고 시낭송 경연을 마치고는 서둘러 뒤풀이에 들어간다. 시인들 답사여행은 시낭송 마치고 술먹는 모임이니까다. 이쪽 시인 최해춘 선생이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는 바람에 우리는 분에 넘치게도 대게에 광어를 먹는다. 대게 같은 것은 먹어본 사람이나 잘 먹는 거지만 역시 포항 어물의 싱싱함은 제주 바다 그것에 비길 만큼 좋다. 그러니 이곳 사람들이 서울 와서 회를 먹지 못한다.

다음날 비가 내렸다. 이육사 청포도 시비도 보려 했지만 비가 웬수다. 차가운 겨울비에 호미곶 카페 2층에서 바다 풍경을 맛보는 것으로 서운함을 대신한다. 이제 나는 권성훈이라는 시인과 단둘이 남아 서울과 대구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포항 죽도시장 고래고기집으로 간다. 기왕 온김에 포항이 주는 것은 다 먹어보자는 것이다. 진미식당이라 하는데 밍크고래란다. 고래는 법적으로는 잡을 수 없다 한다. 하지만 그물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먹는단다. 원래 포유류인데 바다에서 사니 그 맛이 돼지고기같기도, 쇠고기같기도, 무슨 물고기같기도 하다. 부위마다 빛깔과 맛이 다르니 먹는 재미가 있다. 까탈을 부린다고 부려 포항 막걸리를 따로 사다 놓고 마신다. 노는 날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시시껄렁한 농담에, 서로 트집잡고 비난하기에, 없는 호 지어주는 사이에 또 저녁이다. 우리는 또 자리를 옮겨 대게집으로 간다. 박달대게 국산은 얼마인가 보니 큰 거 한 마리가 15만원이나 하고, 그보다 작은 건지 종류가 다른 건지 수입산인지는 8만원을 한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또 물어보니 한 마리에 2만원 짜리도 있고 홍게는 더 싸게 팔기도 한다. 일행 중 누가 호기를 부려 중치로 두 마리를 사니 홍게 두 마리는 서비스로 준단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살아있는 문어를 삶아 먹기까지 했다. 지치게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좋은 날이라고. 서울로 올라오는 밤늦은 기차 안 식당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몹시 피곤한데도 괴롭지 않다고 느꼈다. 인생이 이런 여행 같았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