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피우듯 내 삶에 변화를

▲ 팔공산 묘향사 대웅전<br /><br />
▲ 팔공산 묘향사 대웅전

고급 전원주택단지를 지나 작은 솔밭을 넘으면 곧바로 묘향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빼어난 산세나 절경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길이라 부담이 없다. 기온이 뚝 떨어져 제법 날씨가 찬데 상큼한 상춧잎이 반들거리며 겨울정원을 밝힌다. 절은 솔숲에 숨어서 낯선 객을 기웃거리는 바람을 무심히 쳐다볼 뿐 고요하다.

계단을 오르자 울릉도 굴피집 같은 작은 지붕을 인 하얀 콘크리트 건물이 우리를 반긴다. 예술미 듬뿍 안은 갤러리나 카페, 세련된 전원주택을 연상시키는 대웅전이다. 소박한 법당에는 높은 법상도 없고 단정한 나무문살과 창호지 사이로 배어든 햇살만 뒹굴고 있다. 모든 게 생경하고 이색적이다.

짧은 기도를 끝내고 법당을 둘러본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다양한 종류의 연등도 아름답지만 부처님 뒤의 후불탱화는 여느 사찰과는 다른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연 듯 흥미롭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문봉선 교수가 2년에 걸쳐 만든 작품들이다. 가로 36cm, 세로 30cm 크기의 수묵담채 165장에는 다양한 모습의 신세대 부처님이 그려져 있다. 한지에 옷칠을 해 넣고, 먹으로 그림을 그린 뒤 색깔을 입힌, 21세기에 맞는 기발하고 참신한 발상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 손을 모으고 상큼 발랄한 부처님들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눈인사를 나누자, 편안한 기도 속으로 지인들의 얼굴이 하나씩 클로즈업 되며 전신이 따뜻해져 온다. `화엄경` 경전에 나오는 진리의 구도자 선재동자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은 참으로 삼빡하다. 어쩌면 느린 소 대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가면 선지식을 좀 더 빨리 만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청진기를 들거나 골프를 치는 부처님도 있지만 화투나 술병을 든 부처님도 있다. 모두 존귀하고 존중받아야 할 부처들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에 휘청거리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가 부처임을 알까? 마음이 싸해지며 토닥토닥 안아주고 싶어지는 부처들은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근한 사람들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도 종교를 뛰어넘어 이곳에 살아 계신다. 나이나 신분, 국적에 관계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반겨주는데 안타깝게도 법당은 썰렁하다.

점심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뎅뎅 울리는가 싶더니 곧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경내를 적신다. 법구경이 아닌 클래식 음악이라니, 나는 귀를 의심했다. 온갖 파격의 집합체와 그 조율이 주는 신선함은 연이어 충격을 몰고 온다. 고시공부를 하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공양간에서 식사를 하고 친구와 나는 법당에서 대화를 나눈다. 바깥 잔디밭에는 햇살 업은 바람이 춤을 출지도 모른다. 조용하던 절간에 생기가 넘친다.

스님과 공양주보살이 직접 기른 채소들로 차려진 점심공양은 참으로 맛깔스럽다. 천장 낮은 공양주 보살 방에서 스님과 우리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어릴 적 추억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온기 가득한 방에서 스님은 경건하고 엄숙한 법문 대신 문화로만 머물고 있는 한국불교의 한계를 안타까워하신다. 불교는 철학이며 과학이며 삶임을 알기에 나 역시 불교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 문학의 거장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불교, 자아와 무아를 위해 프로이드와 융도 잠시 다녀가고, 우리는 시대를 뛰어넘고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사이 더욱 진지해진다. 절간에서 듣는 이야기치고는 참으로 진취적이며 현대적이다. 언제나 난해한 선문답 같은 스님의 말씀 앞에서 쩔쩔 매며 주눅 들던 나였다. 모처럼 신바람이 난다. 문학과 철학을 통해 나와 사회,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고민할 수 있는 시간,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읽고 내다보며 시대를 앞서가는 혜민 스님, 부지런하고 싹싹한 공양주 보살, 이 모든 것이 묘향사가 가진 매력이다.

절의 특이한 외관을 보고 어떤 이들은 이단 종교쯤으로 의심하기도 하지만 어엿한 조계종 사찰이며, 부산 범어사로 출가하신 혜민 스님은 지금도 조계종 종무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계신다. 권위적이고 기복적인 불교가 아니라 명상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좀 더 긍정적인 사고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좀 더 책임감 있는 승려가 되고 싶어 하신다.

 

▲ 조낭희 수필가
▲ 조낭희 수필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거나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이 안타까울 때가 더러 있다. 전통을 유지하되 시대에 맞는 불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스님의 외로운 노력과 각오가 울림이 되어 다가온다. 늘 안일한 자세로 그 자리에 머물기를 고집해 온 나도 멀고 거창한 수행보다 일상 속에 작은 명상부터 들여놓고 싶다. 그러면 연꽃이 피듯 삶은 좀 더 맑고 향기로워지리라.

해거름 무렵 사찰을 빠져나오는데 공양주 보살이 따라 나오며 인사한다.

“동짓날에는 꼭 팥죽 드시러 오세요.”

살가운 인사가 산을 빠져나올 때까지 웅웅거리며 우리를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