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언제부턴가 `헬조선`과 `수저론`이 인구에 회자(膾炙)된다. 처음엔 그냥 웃자는 얘기라 생각했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하는 마음에서. 그런데 `지옥불반도`라는 그림이 인터넷을 떠돌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한 우화(寓話)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어째서 이런 신조어(新造語)가 나오게 됐는지, 젊은 세대 반응은 어떤지, 결국에는 이런 신조어 뒤에 내재한 한국사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것이 관건(關鍵)이 됐다.

주지하듯이 `헬조선`이란 용어는 영어의`헬`과 1910년 망해버린 519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의 복합어(複合語)다. 2015년 대한민국이 `지옥 같은 조선`이라는 얘기다. 조선사를 연구하는 전문가 입장에서야 조선이 사랑스럽겠지만, 민초들의 입장에서 보면 허망(虛妄)하기 짝이 없는 왕조 아니던가. 임진왜란 7년도 모자라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일제(日帝)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헬조선` 담론(談論)을 극명(克明)하게 구체화한 것이 `수저론`이다. 조선시대 한양 북촌에서 태어난 자는 금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왔고, 양반집 행랑채에서 태어난 자는 흙수저 물고 나왔다는 이야기다. 처절한 신분제 사회의 비극이야 허균이 `홍길동전`에서 통렬하게 그려냈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의 청년들은 부모의 재산과 학벌 등으로 자신들을 `수저론`에 투영된 계급사회의 일원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경북대에는 8년의 역사를 가진 `복현 콜로키움`이 있다. 한국과 세계의 주요문제를 다각도로 천착(穿鑿)하여 문제제기와 해결방안을 동시에 모색하는 모임이다.

지난 16일 제37차 `복현 콜로키움`에서 다룬 주제는 `헬조선과 청년실업`이었다. 이날의 연사(演士)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유종일 교수였는데, 그이는 `좋은 나라 지식협동조합` 이사장이기도 하다. 비오는 궂은날에도 100여명의 교수와 학생이 그의 강연을 경청하며 문제를 공유했다.

유 교수는 청년실업의 근간에 깔린 분배(分配)의 문제를 지적했다.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격차가 너무나 커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사장 자식을 그 자리로 보낼 것인가 물으면 고개를 흔든다는 얘기도 했다. 좋은 일자리에 지원자들이 몰리고, 거기서 낙오(伍)한 사람들이 시간제 일자리 같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실상(實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분배구조를 혁신(革新)할 수 있는 정치체제와 제도개혁이었다. 현재의 양당제가 아니라, 비례대표제가 활성화된 다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역에 만연(漫然)된 기득권 카르텔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균열시키는 방안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그것이야말로 공정사회와 분배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그는 힘줘 말한다. `헬조선` 타파 가능성은 거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說得力)이 있다고 믿는다. 1천900만 노동자 가운데 630만 비정규직은 과도하며, 청년 실업자가 500만에 가깝다는 것이 실질적인 통계 아닌가?!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反應)은 사뭇 달랐다. 유 교수의 진단(診斷)과 해법이 자기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평이었다.

아버지 세대의 분석과 진단이 아들 세대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결론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반성하고 회개(悔改)하는 기성세대가 절망(切望)하고 탄식(歎息)하는 청년세대를 향해 말을 걸어야 한다.

문제점을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함으로써 `수저론`에 입각한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결론을 서둘러서도 안 되지만, 너무 늦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그 길을 향해 세대차이(世代差異)를 극복하고 묵묵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