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민적인 애도 속에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자신이 9선의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했던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가장으로 치러졌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엔 많은 이들이 함께 슬퍼했다. 이날 영결식장에 참석한 내빈만 장례위원 2천222명을 포함해 주한외교단과 조문사절 80여명, 유가족 관련 인사 100여명, 각계인사 7천900명 등 총 1만명에 달했다. 또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그동안 3만6천 명, 지자체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17만 명 가까운 조문 인파가 몰렸다. 서거에서 장례까지 5일간 온 국민은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자취를 남긴 고인을 추모했고, 정치권은 정쟁을 자제하면서 그가 한국 정치에 새긴 궤적을 되새겼다. 악연으로 얽힌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빈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그의 장례기간은 국민적 화합의 한마당이었다. 영결식에서는 고인의 애창곡 `청산에 살리라`가 울려 퍼졌다. 번뇌와 시름없는 평화를 뜻한다는 `청산`을 이 땅에 실현할 책무는 이제 후인들의 몫이 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과 빈부의 양극화, 수출 부진과 제조업의 활력 상실 등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난국 타개를 위해 국민적 지혜를 모으고 정부와 정치권이 손발을 맞춰야 할 때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민생 법안과 노동 개혁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등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지만, 이들 법안은 정쟁에 밀려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먼저 세상을 뜬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암울한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라는 희망의 횃불을 들어 올려 국민을 이끌었지만, 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양 김`은 싸우면서 협력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요즘 정치권은 소모적인 갈등의 확대 재생산만 거듭하고 있다. 민주화를 쟁취한 지 30년, `양 김`이 물러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정치권은 지역, 계파, 민주와 반민주의 구시대적 구도에서 헤매고 있다. 당파적 정략에 얽매여 싸우느라 시대의 난제들을 극복하거나 통일시대를 열어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는 극에 달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필담으로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결과 투쟁이 아닌 `통합과 화합`이다.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아직 논란이 있긴 하지만 3당통합이란 승부수로 권위주의 시대를 끝내고 문민시대를 연 김 전 대통령의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