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회고록 `내 삶의 의미` 문학과지성 펴냄, 136쪽

“내 삶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라고 하시는데,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군요.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살았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하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나를 이끌었고, 어떤 면에서는 나를 속여 넘겼지요.” (`내 삶의 의미`11쪽)

`자기 앞의 생`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로맹 가리의 회고록 `내 삶의 의미`(문학과지성사)가 번역 출간됐다.

로맹 가리(1914~1980)는 한 작가의 생에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소설상인 공쿠르상을 두 차례 수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한 로맹 가리는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받으며 유럽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한 뒤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리고 19년 뒤인 1975년, 그는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공쿠르상을 또다시 거머쥔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노인, 성전환자, 창녀 등 그늘진 곳의 소외된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던 그는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가끔 숨 막히는 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 희망, 아름다움, 순수, 정의 등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 삶의 의미`에 소개된 글들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몇 달 전 라디오방송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했던 것을 녹취한 것들이다.

이 글에서 그는 삶의 궤적을 찬찬히 좇으며 자신의 모든 작품을 되짚어보고, 자신이 삶에서 추구해온 것들과 소설가로서 작품 속에 담으려 했던 의미를 정리한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삶과 문학을 돌아보며, 여성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자기 삶의 큰 동기이자 기쁨이었다며,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거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타고난 소수자로 칭하며 자신은 좌파든 우파든 다수의 강한 자들에게 반대한다고 할 만큼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던 로맹 가리의 `여성성에 대한 예찬`은 “약함에 대한 예찬과 옹호”로 인권과 연결된다. 그에게 “인권이란 바로 약할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에게 공쿠르 상을 안긴 `하늘의 뿌리` 역시 생태학적인 시각을 넘어 인권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 그는 “코끼리는 곧 인권”이라고, “서툴고 거추장스럽고 성가셔서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는 존재, 진보에 방해가 되는 존재,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해야 하는 그런 존재”로 코끼리는 인권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로맹 가리 특유의 유머 역시 그에겐 사상의 표현이었다. 그에게 “유머는 무기 없는 사람들의 순결한 무기”였다. 그는 “유머는 우리에게 닥친 고통스런 현실을 누그러뜨릴 때 우리가 행하는 일종의 평화적이고 수동적인 혁명”이라고 말한다

이 회고록은 몇 달 후 자살할 사람이 삶을 돌아본 것이기에 매우 진지하지만,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생동감 넘치기에 어둡지 않다. 또한 로맹 가리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이야기는 재미있고 밝지만,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기에 깊이 있을 수밖에 없다. 로맹 가리가 작품을 통해, 삶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뜻,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이 총망라 돼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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