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하버드대 방문 교수

지난주에 방문학자로 와 있던 대학시절의 같은 과친구가 보스턴을 방문했다. 이 친구는 지난주 수요일부터 보스턴에서 모더니즘 학회라는 큰 학회가 열려 이 학회에 참석도 하고 필자도 보기 위해서 겸사겸사 보스턴에 온 것이다. 학회가 끝난 주말에는 친구, 필자 그리고 필자와 같은 연구소에 있는 학자 이렇게 셋이서 보스턴 근교 `케이프 코드`에 나들이를 갔다. 케이프 코드까지 가는 2시간 동안 긴 수다에 지친 우리는 음악을 듣기로 했다.

스마트 폰에 저장된 음악들을 무심코 재생하게 되었고 10㎝의 `쓰담쓰담`, 빅뱅의`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그리고 혁오의 `위잉위잉`이 순서대로 흘러나왔다.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듣던 노래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문학적 감수성이 아직은 충만한 친구와 문학이나 영화이야기를 하다 보니 필자도 이 대중가요의 가사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노래들 사이의 놀라운 `의미`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토닥토닥토닥 토다닥디다리디독 해드릴까요/오갈 데 없던 나에게도/이런 날이 올 줄이야/외로워 미칠 때마다/밤이 외로워 미칠 때마다/그대 두 볼이 빨개질 때마다/불러줘요,”라는 `쓰담쓰담`의 가사를 음미하다 보니 무척 귀엽게 부르는 이 노래가 은근히 야하다는 것과 이 노래에는 외로움이 있지만 `사랑`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 것을 아예 제목에서부터 당당히 이야기하는 빅뱅의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가 떠올랐다.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아직은 잘 모르잖아요/사실은 조금은 두려운 거야 그대 미안해요/우리 약속하지 말아요/내일은 또 모르잖아요/하지만 이 말만은 진심이야 그대 좋아해요.” 서로 좋아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말자는 이 가사는 현재 20대 혹은 청춘들의 관계에 대한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 노래를 듣노라니 문득 필자는 얼마 전 하버드의 대학생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즘 대학생들은 서로 사귀기는 하지만 “너는 내 남자친구다, 혹은 여자친구다”라는 확인을 서로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아직 어리고 많은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떠올리며, 필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단지 이런 생각에서 사랑을 회피하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느꼈다. “사랑도 끼리끼리/하는거라 믿는 나는/좀처럼 두근두근/거릴 일이 전혀 없죠.”라는 `위잉위잉`에 와서는 미래가 불안하니까, 사랑한다 말했다가 결혼하지 못하면 서로 미안하니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다는 빅뱅의 노래가 애교로 들릴 정도이다.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것”이라는 `위잉위잉`의 가사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근대적 사랑의 공식을 철저하게 부셔버리고 있다.`낭만적 사랑`이란 사회적, 계급적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을 가능하게 하는 근대의 마법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랑` 그 자체이기도 한 `낭만적 사랑`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서로 외로울 때면 만나서 위로해주는 가벼운 관계, 혹은 미래(결혼)를 약속하지 않는 즐겁지만 미안한 만남, 그리고 더 이상 계층 혹은 계급 이동의 수단이 되지 못하는 철저하게 산문화된 사랑. 이것은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재인 것이다.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나 `위잉위잉` 같은 노래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 혹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들이다. 이 점은 이 노래들이 음악 어플에서 1위를 했던 것들에서도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사랑을 하지 않는 혹은 회피하는 태도는 필자의 세대가 `낭만적 사랑`을 꿈꿨고, 여전히 사랑에 대한 믿음이랄까, 미련을 갖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노래를 들으며 필자는 요즘 사람들이 종종 말하곤 하는 `삼포 세대`니 `오포 세대`는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명백히 존재하는 심리적 현실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늘 그렇듯이 그들에게 이런 현실밖에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