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지난 주 금요일이 혹시 무슨 날이었는지 기억하시는지? 거리마다 태극기가 내걸리고, 포털서비스 메인 화면마다 국경일을 알리는 문구가 화려한 장식처럼 디자인 되었던 그날은 한글날이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까지 국경일과 공휴일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검색에 따르면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법률로 정한 경축일이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다.

공휴일은 1970년 6월 15일에 제정 공포 된 후 수차례 개정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다. 공휴일은 말 그대로 국가에서 정한 쉬는 날이다. 대표적인 공휴일은 1월 1일, 설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추석, 성탄절, 그리고 선거일과 국경일 등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국경일은 공휴일에 포함된다. 하지만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제외 되었었다.

1991년에 제헌절,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이유는 공휴일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느 정도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문화유산인 한글에 대한 역사의식을 높인다는 이유로 2013년에 한글날은 다시 공휴일로 재지정 되었다. 과연 이것을 N포 세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리 국민들에겐 국경일보다 공휴일에 대한 개념이 더 크다는 것을 올해도 다시 느꼈다. 즉 우리에게 빨간 날은 모두 단지 쉬는 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국민들은 가급적 국경일과 공휴일이 겹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에서는 이런 국민들의 바람을 받아들여 대체휴일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만큼 청와대와 여의도, 그리고 국민의 뜻이 신속 정확하게 삼위일체가 된 제도가 또 있을까? 다른 나랏일들도 대체휴일제도만큼 정부와 국회, 국민의 손발이 척척 맞는다면 N포 세대와 같은 슬픈 신조어들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글날 아침 필자는 라디오를 듣다가 말(言) 멀미를 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청취자의 사연을 너무 맛깔스럽게 읽어 주는 진행자의 목소리에 빠져 힘든 것도 잊고 일을 했다. 그러다 중간 즈음 지나면서 “썸타다” 등 갑자기 낯선 단어들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에 라디오를 끄고 싶었지만 “썸타다”라는 말의 의미를 추리하는데 모든 감각을 빼앗겨 버린 필자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사연 마지막 부분에 들린“심쿵 했어요.”라는 말에 필자는 들고 있던 볼펜을 놓고 말았다.

필자는 하던 일을 놓고 이들 단어들의 뜻을 찾아보았다. 심쿵은 `심장이 쿵쾅쿵쾅 거린다`는 뜻이었고, 썸타다는 `관심 가는 이성과 잘 되어가다`는 뜻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시대에 뒤처진 필자의 언어 감각이 부끄러웠다. 더군다나 신조어 테스트라는 것을 하면서는 부끄러움은 좌절로 바뀌었다.

신조어들은 풍성한 언어생활을 위해서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줄임말 위주의 신조어들은 이와는 거리가 멀어 걱정이다. 더군다나 말 줄임 현상은 10대들에게서 주로 일어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더 이상 세계 문화유산인 우리말이 오염되지 않고, 또 우리 청소년들의 언어 습관이 나빠지지 않도록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 운동이다.

필자는 최근 “바라기”라는 우리말에 푹 빠져 있다. 이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특히 필자는 “??라기-한쪽만 바라보도록 목이 굳은 사람”이라는 뜻이 참 좋다.“사랑바라기, 별바라기” 등 바라기가 붙은 말들은 그 어감이 예쁘다. 그런데 이 좋은 말도 여의도만 붙으면 타락하고 마니 우리나라 국회의 능력을 알만하다. 역사 교과서를 두고 꼴사나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밥바라기”라고 한다는데, 밥바라기란 자산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목숨을 건 사람들을 뜻한다. 한글 정화도 중요하지만 국회 정화가 더 시급한 게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