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길<br /><br />수필가
▲ 임영길 수필가

올해도 찔레꽃이 피었다. 하얀 찔레꽃을 보노라면 무명치마저고리 한 벌로 청춘을 다 보낸 어머니 생각이 난다. 짓궂은 바람 한 줄기 여린 꽃잎을 흔들며 지나간다. 청아한 향기에 가슴이 설렌다. 왜 너만 피면 코끝이 시큰거릴까. 아마도 기억 저편 남모르는 그리움 때문이리라.

하루해가 다 가고 개밥별이 돋도록 산나물을 뜯으러 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제 어미가 안 오고 있는데 감자만 먹고 있다며 벼락을 내렸다. 놀란 형은 안고 있던 감자 바가지를 밀쳐놓고 기둥에 매달려 있던 남포등을 벗겨 들었다. 심지를 한껏 돋우어 불을 키우고는 큰골을 향해 집을 나섰다. 그 길은 새벽에 어머니가 산나물을 뜯으러 간 길이다.

들판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동네를 벗어나 다랑논이 있는 들길 어귀에 이르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풀숲에서 반딧불이 몇 마리가 푸른빛을 내며 날아갔다. 무논에서 극성스럽게 울어대던 개구리가 발걸음 소리에 울음을 뚝 그쳤다. 대체 어머니는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좁은 들길을 지나 산길 초입에서 어머니를 불렀다. 어디선가 “오냐!”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으면 좋으련만, 내 목소리는 금세 어둠에 묻히고 적막이 우리를 에워쌌다. 어쩌면 어머니가 어둠 속에 길을 잃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늦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점점 그 생각이 굳어지면서 나도 몰래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참 훌쩍이는데 큰골 초입 어둠 속에서 “오냐!” 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리를 향해 달려갔다.

어머니는 산나물로 가득 채운 커다란 보퉁이를 등에 지고 어둠을 더듬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맥이 풀렸는지 길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니의 긴 날숨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열여덟에 아버지와 혼인한 어머니는 딸 둘을 낳고 남편을 징용에 보냈다. 일제 수탈이 절정에 이르던 때라 굶어 죽지 않으려면 송기도 벗기고 무릇도 캐야 했다. 군불조차 넉넉하게 때지 못하는 엄동설한에는 두 딸을 끌어안고 아침을 맞았다. 남편 없이 홀로 지켜낸 어머니의 세월을 내가 어찌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원망으로 변해 갈 즈음인 해방을 한 해 앞둔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왔다.

남편이 돌아왔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북해도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며 탄광에서 일한 아버지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도회지 큰 병원에 가면 나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읍내 의원조차 마음 놓고 갈 형편이 못 되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며 버티던 아버지는 끝내 한쪽 다리를 병마에게 내주어야 했다.

설상가상이라고 그 와중에 육이오가 일어났다. 그리고 일 년 뒤 사내아이가 하나 또 태어났으니 그게 나였다. 큰 누님이 출가도 하였는데 동네 사람 보기도 부끄러웠다. 복중에서 호된 고통을 치르고도 나는 섣달 어느 날 건강하게 태어났다. 미역을 사지 못해 첫 국밥을 뭇국으로 때우고 빈 국그릇을 눈물로 채웠노라고 틈만 나면 되뇌었다.

어머니 무덤가 돌담 틈에 찔레나무 한그루가 돋아났다.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었다. 정성스레 가꾸어 당신 보듯 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듬해 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뿌리가 깊으면 산소에 해를 입힌다고 형님이 지난 한식날 찔레나무를 캐내고 영산홍을 심었다. 봄마다 영산홍은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어머니는 늘 찔레꽃 속에 있다. 다소곳이 앉아 있던 꽃잎들이 기다리기라도 한 듯 불어오는 바람결에 하얀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꽃을 떨군 빈 가지는 외로움에 파르르 떨고, 나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에 가슴을 움켜쥔다.

수목원 산책길에 질박하게 피어난 찔레꽃을 본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눈부시지 않고 소박한 모습에 마음을 뗄 수가 없다.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꽃은 다시 피건만 네 마음의 찔레꽃은 필 줄을 모른다. 마음을 옮기지 못하고 찔레꽃 속을 서성이는데 오월의 바람 한 줄기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