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 리쩌허우 지음,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펴냄, 344쪽

중국 사상계의 거목 리쩌허우(85)의 만년 담화집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글항아리)가 출간됐다.

리쩌허우는 소식과 신기질의 말을 통해 모순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묘사했다. 인간은 늘 생계를 염두에 두고 살며 온갖 관계의 그물망 속에 놓여 있기에 내 삶이 진정 나의 것이 아님을 한탄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고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나게 되면 인생에 목적이 없어지고 더 고통스럽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고 마음을 기댈 데가 없는 무료함에서 나오는 허무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종국의 문제를 보다 쉽게 떠올리게 된다. 리쩌허우는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상, 이 모순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자 인간의 존재 상태라고 본다. 그래서 살아가는 것 즉 어떻게 사는가, 왜 사는가, 사는 게 어떠한가의 문제가 자신의 철학의 첫 번째 문제이자 진정한 철학 문제라고 말한다.

실용이성, 낙감문화, 무사(巫史) 전통, 유가와 도가의 상호 보충, 유가와 법가의 호용, 두 종류의 도덕, 역사와 윤리의 이율배반, 문화-심리 구조, 서체중용, 누적-침전설, 제1범주로서의 도(度), 정 본체…. 리쩌허우가 중국과 서양의 철학적 자원을 바탕으로 일궈낸 일련의 독자적 사상들 가운데`정 본체`야말로 앞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에 대한 본격적인 탐색이다. 그는 인간의 고독과 무료함이 전례가 없는 정도에 이른 오늘날, 모든 가치와 의의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 사조에 반대하며 `정 본체`를 제기했다. 오늘날의 세계적인 난제가 없었다면, 정 본체는 나올 수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제기한 정 본체란 다름 아닌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한 애착과 깨달음이다.

리쩌허우는 주희가 말한 `글`과 `맛`이 순전히 `욕망`만도 아니고 순전히 `이(理)`만도 아닌, 일상의 삶을 아끼는 `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의 삶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이라고 한다. “중국에는 두 개의 세계가 없어요. 오로지 하나의 세계뿐이죠. 하나의 세계에서는 초월할 방법이 없어요. 신이 없고 다른 세계가 없는데, 어디로 초월을 하나요?” 리쩌허우가 말하는 중국의 전통은 `하나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신이 있고 초월할 다른 곳이 있는 `두 개의 세계`에서 비롯된 서양 전통과의 근본적 변별점이기도 하다. 하나의 세계, 생존의 경험, 역사, 생명, 인간, 정감…, 이것은 리쩌허우가 강조하는 중국의 전통인 동시에 리쩌허우 자신의 철학적 토대이기도 하다. 요컨대 신이 없는 하나의 세계에서 인간은 역사의 누적-침전을 통한 생존의 경험을 토대로, 생명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인간 스스로 인간(능력과 정감)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자신이 유물론자임을 강조하는 리쩌허우의 철학은 “신·이성·의식·언어·자아 등이 아닌 인류의 생존과 지속에서 출발했고 또 이것을 근본”으로 삼았다. 인류 총체의 생존과 지속이야말로 그가 말한 최고의 선, 지선(至善)이다. 확정성을 추구하는 서양 전통에서는 신이 죽자 이성이 동요하고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휩쓸렸지만 영원한 변화와 과정을 말하는 중국 전통에는 확정성의 추구가 없기에 허무주의도 없다. 영원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 아끼고 애착하고 슬퍼하고 깨달을 따름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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