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명수<br /><br />포항대 교수·관광호텔항공과
▲ 강명수 포항대 교수·관광호텔항공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에서는 `미(美)`가 인간을 구원했고, 톨스토이의 세계에서는 `선(善)`이 인간을 구원했다면, 체호프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인간을 구원했을까? 체호프가 그러한 거대담론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체호프의 세계에서는 `일상적 삶의 이중성을 직시하는 과정`, 바로 그 과정이 인간을 구원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위 인용문은 체호프 원작의 단막극 `결혼신청(청혼)`에 대한 필자의 해설 일부분이다. 2013년 8월 경 김삼일 연출가는 자신의 144번째 연출작품으로 `결혼신청(청혼)`을 선택했다. `김삼일 자유소극장` 개관 작품 역시 체호프의 단막극 `노배우의 고백(백조의 노래)`이었다. 그리고 김 연출가는 2014년에도 체호프의 단막극 `사랑의 노래(곰)`를 무대에 올렸고, 그해에 열렸던 제14회 `포항바다 국제공연 예술제`에서도 체호프의 단편 `담배의 해독에 대하여`를 각색한`블라디보스토크의 하늘`을 상연했다.

2013년에 `김삼일 자유소극장`에서 필자와 김 연출가는 처음 만났다. 바로 그 자리에서 김 연출가는 필자에게 “매년 1편씩 체호프의 작품을 번역해 주면 그 작품을 상연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아울러 필자가 기획하고 번역에도 참여한 `체호프 선집(총 5권)`에서 4권에 실린 단편들(`철없는 아내`, `적`, `롯실드의 바이올린`)을 각색해서 상연해보자고 말했다. 이에 김 연출가는 대구매일신문에 게재된 평보 하태환 선생의 `나의 회고(回顧)`를 각색해 무대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김삼일 연출, 강명수 번역으로 2013년에는 `결혼신청(청혼)`, 2014년에는 `사랑의 노래(곰)`와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늘(담배의 해독에 대하여)`을 상연했다. 2015년에는 아직 체호프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체호프 단편소설 각색뿐만 아니라, 평보의`나의 회고`각색도 못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가 8월 19일부터 30일까지 `2015 게릴라(소)극장 해외극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체호프의 단편은 이렇게 각색된다`를 상연했다. 네 명의 연출가가 체호프의 단편 일곱 편을 릴레이로 보여주었다. 연희단거리패 꼭두쇠인 이윤택은 `철없는 아내`를 연출했고, 연희단거리패 대표인 배우 김소희는 `적`을 연출했다. 필자가 번역한 단편 `철없는 아내`와 `적`이 각색돼 상연된 게 반갑기는 하지만, 서울 대학로 게릴라소극장에서 먼저 무대에 오른 게 좀 아쉽다.

이쯤에서 한 번 물어보자. 왜 21세기에도 유독 체호프인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체호프 예술세계의 특질`에 대한 언급으로 대신할 수 있겠다. 체호프의 예술세계는 마치 콜라주 기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듯이 축조된다. 체호프는 일상적 삶의 총체적 모습을 그리는데 필요한 소소한 일상사를 그러모은 다음에, 병렬적으로 재구성한다. 체호프의 세계에서는 인과성보다는 우연성이 앞선다. 우리네 삶, 역시 그렇지 아니한가? 또한 체호프의 주인공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인물들로서 일상적 삶의 범속성·속물성·상자성에 갇혀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적 삶의 세계에서 탈주를 감행하거나 출구를 찾고자 애쓰는 인간으로 형상화된다.

희극적·정서적·심리적 요소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체호프 드라마`를 김삼일 자유소극장에서 자주 상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은, 포항연극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포항문화운동 차원에서도 유의미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김 연출가는 “소극장이야말로 연극의 정신, 예술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의 연극도 `자유소극장`에서 탄생됐다. 포항문화예술의 창달을 위해 소극장은 계속 지탱·운영돼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포항시가 2016년도 `문화도시`조성 시범사업지로 선정됐다. 이 사업에는 문화시민 육성 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도 있고, 문화도시 조성사업 플랫폼 구축과 문화예술거리 기반 조성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것들과 연계해서 포항문화운동도 활성화되고, 포항연극 소극장시대도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지역문화융성의 실질적 토대가 마련돼, 창조도시 포항이 실현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